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Photo : ) 달라스 리스타트 교회 담임 박형용 목사

<만나보기> 성경의 인물들을 만나보며 내 인생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는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을 때… 다윗의 이야기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 사무엘하 11장 1-4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불러왔던 “다윗의 간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절을 보면,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라고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전쟁을 하기 어려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따뜻한 날씨가 찾아왔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이라는 족속에 맞서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11장 1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한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접속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접속사를 넣어서 히브리어 성경 원문의 의미대로 번역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전쟁에 나갔다. 그러나 다윗은 왕궁에 머물러 있었다” 라고 번역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그러나” 라는 단어가 지금부터 벌어질 사건에 대한 안좋은 분위기를 미리 예고해 주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면, 다윗 또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전쟁터에 나가서 그들을 이끌고, 격려하며, 함께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해야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무엘하 11장 2절은 말합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모든 백성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다윗은 한가로이 왕궁 지붕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높은 왕궁의 지붕에서 어떤 여인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히 그 자리를 떠났어야 했는데, 다윗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한채로 사람을 보내서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오도록 했습니다. 다윗은 더 나아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죠. 왜냐하면 신하들이 알아보고 온 바,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여자의 남편은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아”라는 사람이었죠.

사무엘하 23장 39절을 보면, 우리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삼십 칠 명”이라는 것은, 다윗의 충성스러운 용사 삼십 칠 명의 리스트에 우리아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아는 충성스러운 다윗의 신하였다는 거죠.

그런데 다윗은 그의 아내인 밧세바와 잠자리를 가지고, 그 후에 밧세바가 자기로 인해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다윗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힘을 가지고 이 사건을 덮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 소식을 듣겠다는 명목을 가지고 우리아를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며칠 밤 지내게 해서 마치 그 동안에 임신이 된 것처럼 자신의 죄악을 덮으려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또한 그 일을 위해서 우리아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준비해서 마음이 풀어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아가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윗의 죄는 덮일거라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우리아가 다윗의 생각보다 훨씬 더 충성스러운 종이었기 때문에 다윗의 계략은 실패 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0절에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통해서 요압에게 편지를 건네 주게 했습니다. 그 편지 안에는 전쟁터의 가장 최전선에 우리아를 배치해서 죽도록 만드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고, 우리아는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이 담긴 편지를 요압 장군에게 건네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아는 죽게 되었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장 27절을 보면, 다윗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다윗은 자신의 죄를 완벽하게 감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보고 계셨다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다윗의 행동이 악했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시고, 그에게 무서운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감사한 것은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심판 선언을 듣고, 마음을 완악하게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범죄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비록 그 죄의 여러 결과들을 다윗이 마주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사건을 살펴 보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도 때로는 범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름다운 수많은 시편을 지어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도 한 순간에 범죄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 넘어질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두번째 사실은, 죄로 인해서 넘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범죄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성령의 책망하심을 들을 때에, 그래서 그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는 것이죠.

시편 51편 1절에는 다윗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뒤에, 회개하며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무엇을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그리고 자비하심을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죄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붙들어야 하는 “죄 사함의 근거”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3절과 4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범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를 고백할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조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살펴 보겠습니다. 시편 51편 7절을 보겠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왜 다윗이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달라고 했을까요?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우슬초”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자라던 작은 식물을 이야기 하는데,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쓰이던 식물을 이야기 합니다. “우슬초”라는 풀은 높이가 20cm에서 25cm 정도 되는 식물인데 그 뿌리를 잘라 버리고, 붉은 끈으로 짧은 막대기에 묶어서 빗자루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우슬초 묶음을 가지고 애굽에서 유월절 의식을 치룰 때 했던 것처럼 희생 제물의 피를 문설주나 신자들에게 뿌리는데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우슬초”라고 하는 것은 “희생제물과 죄사함”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윗이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자신의 죄를 자복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에게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회개의 요청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51편 1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지금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라는 표현에서, “창조하시고”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바라(-בְּרָא)” 라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이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라고 이야기 한 것을 쉽게 바꾸어서 표현해 드리면,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라는 표현인 것이고, “나를 새롭게 해달라”는 다윗의 간절한 회개의 요청이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때때로 성도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다윗조차 하나님 앞에서 간음과 살인이라는 더러운 죄를 지었던 것 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자책감과 정죄감 때문에 숨어 버리게 하는 마귀의 목소리가 들릴 수도 있습니다. “너 같은 게 예수 믿는 사람이냐? 그러고도 구원 받은 사람이냐?”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흔들고, 우리로 하여금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도록 막으려고 하는 마귀의 속삭임이 다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면 오늘 다윗의 이야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범죄했을 경우에는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시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를 깨끗하게 하시기를 회개하며 주의 은혜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여러분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빛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하심과 은혜를 날마다 경험해서,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