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성경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행 7:20절에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삼상 16:12절에는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모세와 다윗의 용모가 빼어나게 잘 생겼다는 의미이다.  

우리말 성경을 참조해보면 모세와 다윗의 외모가 출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외모로 말하자면 빠질 수 없는 이가 한 명 있다. 사울 왕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을 때 그는 키도 크고 인물도 잘생긴 상태였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다. 이유는 외모는 빼어났으나, 내면의 약점과 그로 인한 문제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사울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 아니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인데, 그들은 이방 나라처럼 자기들도 눈에 보이는 왕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너희들이 그렇게 원하는 인간 왕을 세워줄 테니 그 진가를 한 번 맛보거라!'고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셨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연약한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내고 만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후에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셔서 그중 한 명을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명령하셨다. 

이새의 집에 도착한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을 보자 그 탁월한 키와 외모에 빠져서 그를 왕으로 기름 부으려고 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삼상 16:7절의 말씀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구절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 아들들을 다 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이가 없었다. 이새로부터 양을 치는 막내 아들 한 명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부르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사무엘 앞에 불려온다. 그 막내 다윗에 대한 소개가 삼상 16:12절에 나와 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다윗의 세 가지 특징을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데, 두 번째 내용이 '얼굴이 아름답더라'였다. 어린 시절,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키와 용모를 보지 않고 중심, 즉 내면을 보신다고 했는데, '불려 온 다윗의 외모가 아름다웠다'라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아름다운'이라는 원어를 찾아보았다. 결과는 잘못된 번역이었다. 모세에게 사용된 헬라어 'ἀστεῖος'와 다윗에게 사용된 히브리어 'טוֹב'라는 단어는 '외모의 뛰어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삼상 16:7b도 잘못된 번역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를 원어에 맞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육안으로 (사람의 외모를) 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심안으로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은 눈으로 상대방의 외적인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마음으로 사람의 내면의 빼어남을 보고 평가하시는 분이시다. '내면의 아름다움',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아름다움'의 정확한 의미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의 고난과 아픔의 불길이 그들을 사랑의 사람으로 형성하거나 빚어낸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다. 외적으로는 자기보다 우수한 형들로 인해 집에서 배척 당해서 위험한 목자의 일을 도맡아 보게 되었다.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천대 멸시받았던 소년 다윗은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들판에서 홀로 외롭게 양들을 치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적인 영성과 탁월함이 형성되어온 것이다. 

그렇다. 외적으로는 출중한 형들에 비해 떨어졌지만, 내면의 우수함으로 빛났던 사람, 그가 바로 '아름다운 사람' 다윗이다. 

퀴블러-로스의 글을 책에 인용했던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도 그런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사람이다. 그는 고통에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런 부정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사명의 위대한 사람으로 빚어졌다. 그를 기억하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금도 그의 깊은 사랑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자'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모두 모세와 다윗과 윌라드와 같이 내면이 아름답고 탁월한 사명자들이 다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