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종일토록 남한산성 근처의 군부대에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1980년 초 소위 임관을 앞둔 마지막 전투 능력 측정이었습니다. 같은 과에서 ROTC 훈련을 받았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당시에 대학부 회원이었던 저는 금요 철야 기도회에 참여하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던 철야 기도회에 열심 있는 청년들과 교사 선생님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다과를 한 후, 개인의 신앙과 교회, 그리고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제목을 내고 통성으로 기도한 후, 한 사람이 대표 기도로 마무리하기를 수차 반복하였습니다. 거의 마지막으로 국가와 정치인을 위해 통성기도 한 후, 제가 대표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야당 대표이신 김영삼 당시 교회의 시무장로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비서실과 장관들, 그리고 대통령 주변의 신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는 성구를 인용하며, 정치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아침에 교회 앞을 나서니 태극기가 조기로 걸려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에 허탈한 마음과 놀라움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때 저는 하박국 선지서를 연구하여, 몇몇 후배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왕국의 타락에 대한 선지자의 항의,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 악한 바벨론을 심판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하박국의 두 번째 항의, 바벨론 제국을 사용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응답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은 “세상 권세의 유한함과 주의 통치는 영원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저의 마음을 아프고 시리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마음에 둔 제게 “네 나라는 한시적이지만, 내 나라는 영원하다”고 주님이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 12ㆍ12사태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격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주님은 제 안에서 조국과 천국의 우선순위를 바꾸셨습니다.
땅의 정치를 생각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를 각인시켜주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정치’와 ‘하나님의 정치,’ 인간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정치와 메타-정치를 분리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 수술이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하나님의 나라가 믿어지며, 이 세상 나라의 상대성과 잠정성(temporality),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과 궁극성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애국심, 정치적 책임이 나름 재편성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민족 사랑과 책임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비상한 상황을 맞이하며, 저도 부분적으로 금식합니다. 정치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교회는 정치신학의 다양한 입장을 비교, 묵상할 때가 되었습니다. 던컨 포레스터(Duncan Forrester, 1933-2016)라는 공공신학의 창시자는 초대교회에 3가지 종류의 정치신학이 있었다고 그의 책 『신학과 정치』에서 주장합니다. 하나는 제국의 황제를 위한 유세비우스의 “궁정신학,” 둘째는 ‘정치와의 분리와 거리두기’를 말하는 터툴리안의 “반문화신학”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을 구분하고 후자에 선지자적 비평을 제공하려는 어거스틴의 “예언자적 신학”입니다.
고국을 위한 기도는 우리의 중대한 정치참여입니다. 아울러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성품인 정의와 사랑이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실현되도록 평소에 활동하는 것은 우리 모든 기독 시민의 사명입니다. 고국을 떠난 교포들이 다니엘과 에스더처럼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