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주의의 시대적 특징 중의 하나는 직업 또는 직종분야가 더 세밀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학문을 예로 들면, 대체로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의학, 법학, 신학, 철학, 같은 큰 단위의 학문들이 20세기 들어 오면서 위생학, 통계학, 인구학, 지리학, 나아가 21세기에는 소방학, 장례학 같은 다양한 학문의 분야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인구가 많아지고, 각종 생활양태도 다변화 되어 있고, 이러한 다양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더 세밀하고 정밀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직종의 분업화를 말한다 할 수 있다.
분업화란 하나의 단일한 체계가 여러 종류로 분산하여 각 분야 고유의 기능을 행사하므로 더 효율적인 생산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를 예로 든다면, 자동차 몸체, 엔진, 트랜스미션, 타이어, 유리같은 것을 한 화사가 다 생산했는데, 분업하여 각 파트를 각자 따로 만드는 공장이 서게 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럴 경우, 더 전문화되어 기술은 향상되어 좋은 부품은 만들 수 있으나, 회사로서는 분리되어 나간 만 큼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분업화는 재질은 향상되나, 힘은 분산으로 인해 약화되는 약점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더크하임(Emile Durkheim, 1858~1917) 은 "자살론"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유대교, 카톨릭, 그리고 개신교의 성도들의 자살 숫자를 비교연구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유대교는 율법이라는 헌법 테두리 안에 생활권이 있어 비교적 낮았다. 카톨릭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강한 구조 때문에 유대교보다는 조금 높았으나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는 비율이 아주 높았다. 이유는 이런 사안에 대한 개신교 전체를 통괄 할 수 있는 기능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신교를 살펴보면, 여러 교단으로 분산되어 있어 어떤 사회도덕 윤리에 대한 통합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각자 교단으로 나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개신교는 분산되어 있어 기능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강력한 힘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개신교 교회들이 숫자는 많다고 하지만, 기독교 단일대오의 통합된 기능이 없어, 그리고 분산된 상황이어서 크리스천으로서의 도덕이나 윤리정신은 그리 확고하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신교에 있어서 지금 이 시대는 융합적 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회 전반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인간정신과 삶의 자세를 변화시켜 갈 수 있는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천후 목회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설교, 심방, 상담, 교육, 사회지식, 역사철학, 기독교 윤리의식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흐트러져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통합시키고, 믿지 않는 냉소적 사회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융합성의 지도력을 보여 준 신앙의 인물들은 많다. 우선, 사도 바울에게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의 교육을 받아 당시 유행하던 그리스 철학자들과의 논쟁에 당당히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그리스도됨을 강조하고 설교하였다(행 17:18). 바울은 윤리의식도 높아 당시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의 일부 부도덕함이나 비도덕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 역시 아낌없이 했다. 또한, 그는 영성의 힘도 소유하여, 어떤 환경이나 처지에 놓여 있어도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어땠나? 그 역시 정말 다양한 실력과 장점을 겸비한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당시, 카톨릭의 비성경적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지적하는 지(知)적 능력과, 이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카톨릭으로부터 협박과 비난을 이겨내는 영적 힘도 갖추고 있었다. 지적, 도덕적, 용감성, 의지의 요소를 겸비한 지도자였다. 하나의 능력만으로는 개혁을 단행하고 이루기는 어렵다. 필요한 요소들을 고루 갖추었기 때문에 기독교 본래 정체성을 다시 새롭게 세워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존 웨슬리는 설교로, 부흥운동가로, 신학이론을 세운 학자로 사회사업가 행정가, 저술가, 교육가로 융합의 기능을 가진 복음운동가였다. 그는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복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설교는 영국인들의 타락한 영혼을 변화시켰으며, 탁월한 윤리의식으로 성결론을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흔히 웨슬리를 "복음 전도자요, 설교가요, 학자요,조직 행정의대가"라 부른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는 교회부흥이라는 미명 아래 오로지 많은 성도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헌금이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성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구역을 조직하고, 구역 조직을 통해 신앙생활을 인도한다는 가정하에 성도들을 관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통제받지 아니하고 개별적인 목회를 하니, 수천 수만의 교회 스타일이 생기게 된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지금 언급한 대로 이러한 울타리 치는 부분에는 지도자 모습이 보이지만, 예수의 정신을 개인이나 사회에 세워가는 능력이나, 실천, 또는 학력 높은 사회가 되었는데, 그들과 상담하여 크리스천으로 변화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한국교회는 신학에서도 통일된 신학을 유지해야 한다. 교단마다 같은 성경구절도 다르게 해석하니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신진화론 같은 비성경적 학설 역시 기독교 진리의 힘을 분산시키는 일이 된다. 이에 교단도 하나의 체제는 안되더라도 협력, 융합하는 자세를 가져야 기독교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분업의 입장에 있을 수 있으나, 리더십에서는 신학적 지식, 기독교 윤리의식, 역사의식, 세계를 뚫어볼 수 있고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세계관 소유에 대한 통합적 능력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지력과 영력과 용기있는 행동력의 장점들을 융합한 목회자를 이 시대는 부르고 있다.
오늘날 커피숍은 커피, 빵, 브런치, 갤러리 등 융합적인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리더십 유형도 융합적 지도자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하이브리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