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2)

 누가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가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둘 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모두 갖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굶어 죽게 되자 부잣집 돼지 먹이를 먹다가 풍요로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먼 거리에서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 나가 환대를 하며,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밭에서 돌아온 맏아들이 아버지가 탕자 동생을 환대하는 모습을 보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탕자는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짜 탕자는 둘째 아들이 아니라 첫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간파(看破:보아서 속내를 알아차림)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나가, 창기와 더불어 즐기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둘째 아들이 탕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일도 없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맏아들답게 재산을 관리하며 농사를 지으면서, 아버지에게 순복한 큰 아들은 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형이 재산의 절반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자식이기 때문에 어떠한 모양으로 돌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맞아 들일 수 있었지만, 형은 동생의 삶의 태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이 왜 동생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동생이 거지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동생이 먼 나라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어 가지고, 황금마차를 타고,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귀향 했다면 형은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가 동생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그렇게 맞이할 수 없었던 것은, 동생이 빈 털털이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이 동생을 환영하느냐 배척하느냐는 것은 바로 재산의 유무(有無)였습니다.

 동생이 돈을 엄청나게 벌어 왔다면 형이 쌍수(雙手:두 손)를 들고 환영했겠지만, 거지꼴로 돌아온 동생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은 피를 나눈 혈육으로서의 동생보다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왔느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혈육보다 돈을 더 우선한 것입니다. 형은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돈 많은 사람을 우대하며, 환대하고, 존경하지만, 돈 없는 가난뱅이들은 무시하고, 괄시하며, 차별합니다. 형의 삶의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사는 탕자들의 모습입니다.

 수 천 년 전, 욥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우대했지만, 빈털터리가 되자, 평소에 깊은 우정을 나누던 절친들마저 욥을 지탄(指彈:잘못을 지적하며 비난함)했습니다.

 돈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 그 자체를 인간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탕자입니다.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의 인격과 삶을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사람을 평가 할 때, 돈보다도 그 사람의 인격과 믿음을 우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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