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독특하고 다양하게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조화롭게 다스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지체들이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 작동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셨다. 이처럼 성경은 다양성을 말할 때 통일성과의 균형을 강조한다. 가정이나 모든 사회기관에도 다양성과 통일성이 필요하다. 반면 사회정의 이념에서 부르짖는 다양성(diversity)은 항상 평등(equality)과 포용(inclusion)이라는 용어와 붙어 다닌다. 그들이 강조하는 DEI의 이념은 다양한 약자, 소수자 집단을 사회의 주류 집단이 평등하게 대우하고 포용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주장과 행동을 보면 분명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먼 르베이(Simon LeVay)는 동성애자이면서 유전학 연구를 통해 동성애가 유전된다는 동성애 편향적 주장을 펼쳤던 게이 신경과학자이다. 그는 LGBT 잡지에 젠더불쾌증(자신의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남녀라는 성 정체성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증상)을 가진 아이들의 말을 너무 그대로 받아들이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최소한 사춘기가 끝나기 전에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라는 젠더주의 이념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했다가 젠더주의자들에게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가수 베트 미들러와 작가 JK 로울링, 이 두 여성은 모두 LGBTQ 운동의 오랜 지지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트랜스젠더이념 때문에 여성성이 손상받는 것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고, 이후 그들의 트윗은 젠더주의자들에게 강력하고도 저속한 방식의 비난받았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의 우승만 18회 했던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적 선수이다. 그녀는 1980년대 레즈비언임을 밝혀 큰 물의를 일으켰고, 지난 수십 년간 LGBT 권익 옹호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최근에 그녀는 남성에서 트랜스-여성이 된 선수들이 여성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성 소수자(LGBT) 운동선수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운동선수 연맹(Athlete Ally)'은 그녀의 발언이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발언이라고 비난했고, 그녀를 연맹 자문위원회에서 축출하고, 홍보대사 임명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트랜스젠더를 비평하는 사람들은 젠더주의 성 혁명가들에게 공격적인 질책을 받는다. 비평한 사람들은 트랜스 혐오, 증오 심지어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특히 LGBTQ 커뮤니티 내에서 이런 의견이 제기될 때 더욱 강하고 신랄한 비판을 받는다. 한 트랜스젠더 활동가는 이들의 발언에 "무책임한 것 이상"이라는 딱지를 붙였으며, 이는 그들 커뮤니티가 괴롭힐 공격의 대상임을 암시한다. 이후 르베이, 미들러, 로울링, 나브라틸로바는 LGBTQ 집단 내에서 집중적인 비판과 조리돌림을 당하고, 그들 사회에서 매장된다. 

사회정의를 주장하는 집단은 많은 소수자, 약자들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마르크스 이념에서 노동자와 농민으로부터, 페미니즘에서 여성, 인종주의에서 유색인종, 성 혁명 이념에서 동성애자, 소아청소년,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가 있다. 이들은 다양한 소수자들을 양산하면서 이들이 주류세력을 공격하도록 부추긴다. 노동운동, 페미니즘 운동, 흑인 혹은 소수인종 운동, 동성애 운동, 학생 운동, 등을 거쳐 최신의 이슈가 젠더주의 운동이다. 이들은 주류세력을 꼼짝 못 하게 묶을 수 있는 소수자 의제 개발을 원하고 있다. 젠더 이슈를 가장 앞세우는 이유는 만약 남자를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을 반대할 수 없게 만들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들의 주장대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르베이의 게이 집단이나, 미들러나 로울링의 페미니스트 집단, 나브라틸로바의 레즈비언 집단, 등 다른 어떤 소수자 집단보다 트랜스젠더 집단을 통해 주류 집단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런 이유로 근래에 미국에서 젠더 이슈가 심각하게 떠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사춘기 이전 어린이들의 성전환 시도가 급증할 것이고, 이것을 반대하는 부모나 의사는 개인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혐오주의자로 낙인찍히고, 차별금지법에 따라 자녀를 빼앗기거나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 

결국 사회정의가 주장하는 것은 획일적, 집단적 다양성이며,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며, 주류 집단이 이것을 무조건 포용하라는 뜻이다. 그들의 주장이 성경의 DEI와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명령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를 전적으로 거부할 명분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사회정의 이념에 의해 사회 전체의 제도나 문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이 소자 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마 18:14)처럼, 내 앞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나의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