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악랄한 전쟁범죄 자행하다 원자탄 두 발로 완전한 종결 맞아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인류의 악의 집결된 무기로 종교적 자유 확립
악한 정권 심판의 도구로 활용돼... 맨해튼 프로젝트, 긍정적 작용
군국주의 미쳐 날뛰던 일본인들 폭탄 위력 보고 역사의 형벌 체감
◈종교적 박해와 관용: 종교 불관용의 정치적 부담
영화 <오펜하이머>의 서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폭을 제작한 군사계획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론물리학자 중 하나였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행적과 경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주로 휴머니즘 관점에서 원자폭탄이라는 끔찍한 대량살상무기가 탄생한 역사적 장면을 하나의 비극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 투하된 두 발의 원폭에 한해, 기독교적 시각으로는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일단 한국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완전하게 종식시킨 '해방의 일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넓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즉 세계교회사 관점에서 태평양 전쟁을 종식시킨 이 두 발의 핵무기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교회의 관점으로 본다면 세계사란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 그리고 그 결과 이 자유가 점차 공고해지고 확산되는 역사로 볼 수 있다. 지난 2천여 년의 기독교회 역사 가운데 모든 박해의 위기 이면에는 종교적 관용의 부재라는 시대적 정황이 관여돼 있었다. 그리고 이런 종교적 관용의 부재 상황은 거의 반드시 역사적 진보의 물결에 휩쓸려 상당히 과격한 방식으로 해소되었다.
로마 제국의 초대교회 박해는 약 250년 동안이나 지속됐지만,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그리고 이 장기간의 박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250년 내내 항상 대규모 박해가 이어졌던 것이 아니라 몇 차례 간헐적 박해 시기가 존재했으며, 각각의 전면적 박해는 그것을 주도한 황제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박해가 초래한 막중한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대부분 단기간에 종료됐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였다고 해석할 수 있고, 학문적 입장에서는 종교적 열망과 믿음을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억누르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로마 제국 이후 교회에 대단위 박해가 다시 발생한 것은 종교개혁 시기였다. 중세에도 이단 심판을 통한 종교적 불관용 시기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국지적 수준에서 머물렀다. 반면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을 옹호하는 정권들의 개신교 박해는 당시 기독교 세계 전체를 뒤흔든 대규모 사건이었다.
이 박해는 결국 가톨릭 국가들의 학문과 경제력 쇠퇴로 이어졌다. 당시 개신교로 개종한 이들 가운데는 온전한 이성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받들려는 지식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대부분 명성 높은 학자나 상공업 종사자들이었기에 개신교인을 죽이고 투옥하는 처사가 곧 해당 국가의 상공업 쇠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처사가 곧 막대한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보름스에서 '종교재판'을 받는 마르틴 루터. |
◈종교적 박해와 진보: 종교적 자유를 억압한 제국주의 일본에 내려진 역사의 심판
미국 역사학자 페레즈 자고린은 종교개혁 시기와 계몽주의 시대 초기 서구 역사가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데는 크게 두 가지 신념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개신교 내부적으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왕이나 정부가 교회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전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교회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정교분리 원칙이다.
둘째는 개신교 바깥 세속정치 영역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공리적인 정치를 위해, 왕이나 정부가 교회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종교적 관용 원칙이다. 양측이 서로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전자는 신앙을 위해, 후자는 정치 안정과 사회 복리를 위해 각각의 원칙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서로 확연히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기독교회를 둘러싼 세계 역사는 잠깐씩 후퇴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결국 종교적 자유나 관용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진전돼 왔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20세기 초 이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을 전면적으로 역행한 세 정권이 세계 역사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레닌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 히틀러의 나치 독일, 그리고 군국주의 열강 일본 제국, 이 세 열강 정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종교적 자유를 억압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종교 공동체의 강압적 소멸을 추구했고,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은 각각 자국 내 종교 공동체를 어용단체로 삼았다.
독일에서는 교회들이 히틀러의 나치즘에 동조하며 그를 위대한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1930년대 내내,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이후 히틀러는 독일 내에서 철학적으로는 위버멘쉬(초인),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독일 민족의 구세주로 자리매김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일왕을 신성시하며 그를 섬기는 내각과 군부(섬긴다는 명분으로 일왕의 권위를 악용했던)에 절대적 복종을 요구했고, 일왕 신격화에 일본 내 모든 종교 공동체, 특히 불교와 기독교회가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
신토는 어차피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신앙을 믿는 종교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일왕 신격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했다. 불교계는 특정 개인을 신격화하는 것이 만물 안에 동등한 불성이 담겨 있다는 가르침에 위배되기는 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 역시 일제의 어용집단이 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일왕과 그들의 전쟁영웅 신격화의 총본산 야스쿠니 신사. ⓒlivejapan.com |
반면 기독교회는 인간을 신격화하는 행태를 우상숭배로 단정했기 때문에, 일왕 숭배나 전쟁영웅 숭배에 극렬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일본 본토 기독교 지도자들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매장됐고,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여러 목회자와 신자들이 옥고를 치르고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일제의 영토 팽창은 일본이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만큼이나 악랄한 여러 전쟁범죄를 자행하면서 한계에 이르렀고, 결국 미국의 원자탄 두 발로 완전한 종결에 이르렀다.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순간에 인류의 악의가 총체적으로 집결된 이 흉악한 무기가 종교적 자유 확립에 역행하는 악의 정권에 심판의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다수의 물리학자와 군사기술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한 결과물과 그것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의 결정은 영화 <오펜하이머>가 묘사하는 것과는 다르게 순수한 악으로만 보기 어렵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든 세계사적인 관점으로든, 당시의 핵무기 투하는 인류 역사의 진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여러 모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다못해 군국주의라는 광기에 미쳐 날뛰던 일본인들조차 그 위력을 보고 인류 역사의 정당하고 거대한 흐름을 역행할 때 어떤 형벌을 받는지 비로소 체감할 지경이었다. <계속>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돔, 원폭 당시 폭심 지점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익스피디아 |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