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 소년이 학교에서 편지 한 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무도 이 편지가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줄 몰랐다. 아이는 선생님이 편지를 줬다며,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당신의 아들은 천재입니다. 이 학교는 그를 가르치기에 너무 작은 학교이며, 좋은 선생님도 없습니다. 당신이 아이를 가르쳐주길 바랍니다."
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아이를 집에서 직접 가르쳤다. 병에 걸려 죽는 순간까지... 엄마가 떠난 지 수 년이 지나, 아들은 유능한 발명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들은 엄마의 유품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선생님이 엄마에게 보냈던 그 편지가 놓여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아들은 저능아입니다. 우리 학교는 더 이상 이 아이를 받아줄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퇴학 처분을 내립니다."
그는 편지를 읽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자신의 다이어리에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토마스 에디슨은 저능아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이 시대의 천재로 변화시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이야기다.
만일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선생님이 준 편지의 내용 그대로 읽어주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보자. 아마도 진짜 저능아로 살았을 것이다.
이와 엇비슷한 얘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어린 시절 한 사람의 일화가 있다. 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의 중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도시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았지만, 마침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기로 결단을 했다.
하지만 아들은 68명 중에 68등을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실망할 것을 염려해 성적표의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쳐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다. 어설픈 거짓말은 뜻밖의 일로 번졌다. 아버지는 자식의 1등을 축하한다고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벌였다.
아들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가장 큰 재산이었던 돼지를 아낌없이 잡아서 잔치를 벌여주셨던 아버지의 고마운 마음을 평생 지울 수 없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되고, 대학교 총장까지 되었다. 그가 바로 경북대 총장까지 지낸 박찬석 박사이다.
세월이 지나 아들에게도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고요한 밤에 아버지와 마주한 아들은 아무래도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막았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손자 듣는다."
아버지는 속은 게 아니고 속아준 것이다. 아들만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속은 것으로 생각하고 일생을 산 것이다. 그런데 그 속아준 게 아들을 훌륭하고 멋지게 만들었다.
만일 아버지가 아들이 등수를 속인 것을 알고서 심하게 꾸짖고 매를 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사와 총장은커녕 공부를 포기한 채 일생을 실패한 인생으로 비참하게 살지 않았을까? 에디슨의 경우는 어머니가 아들을 속임으로써 그를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었고, 박찬석 총장의 경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속아줌으로써 그를 박사와 총장으로 빚어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때로는 아들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속일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케 하는 두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 정죄와 비난 대신 따뜻한 칭찬과 격려로 이 나라에 가치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