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미국의 교회사를 보면 2차 대각성 부흥 운동(1790-1840)은 1차 대각성 부흥 운동 때와는 달리 교단별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미 서부 지역으로, 그리고 당시 아시아의 중심 나라들인 중국, 인도, 일본 등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한국이 선교 국가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3차 대각성 부흥운동(1850-1900)이 되어서야 한국이 선교 국가로 지정되었고 이때 공식적으로 두 선교사를 파송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885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그리고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가 그해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19세기 후반에는 이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활발하게 복음의 행진이 이루어지고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찬송가를 통해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즐겨 찬송하는 "날 위하여 십자가에 (어찌 찬양 안 할까, How can I keep from singing)"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의 초교파 목사인 사사오 테쓰사브로(T.Sasao;1868~ 1914)가 작시한 곡으로 당시 일본에 널리 퍼져있는 교회들에서 이미 찬송하였던 곡입니다. 

이 곡은 원래 미국의 침례교 목사요 작곡가인 로버트 로우리 (Robert Lowry, 1826- 1899)가 쓴 곡입니다. 그가 1869년에 그의 노래집 'Bright Jewels for the Sunday School'에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곡입니다. 이 곡이 발표된 당시에는 미국의 3차 대각성 부흥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복음으로 인한 소망이 중심 가사가 되어 복음 찬송이 많이 작곡되어졌고 그것이 불리며 미국 교회들에서는 큰 성장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이러한 영향으로 이때 만들어졌던 복음 찬송을 당시 선교사들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 찬송의 중심이 되었고 한국 교회사에 있어 찬양을 통한 복음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때 만들어졌던 찬송들이 우리 찬송가에 많이 남아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것을 즐겨 찬양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 후반, 미국의 3차 부흥 운동 시기에 로우리 목사님은 미국 교회음악에 중심인물로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1869년 처음 이 곡을 썼던 제목은 "How can I keep from singing"으로서, 현재 우리가 찬양하는 가사와는 많이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당시 로우리 목사님은 작시자를 명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원래의 내용은 시편 96편의 내용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온 세상이 마땅히 찬양해야 할 당위성을 시편 저자는 주님의 의로우심 - 광대하심, 존귀와 위엄,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판단하실 공의의 하나님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내 삶은 끝없는 찬양 속에 흘러가고 어떠한 폭풍이 내 마음의 고요함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 어찌 찬양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작곡자 로우리 목사님은 위의 내용을 가사에 중심으로 삼아 찬송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찬송은 일본의 사사오 목사님이 1897년에 로우리 목사님이 작곡한 선율에 맞추어 원제목을 그대로 둔 채 가사를 패러디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는 찬양을 드려야 할 당위성을 원래 저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 고백을 합니다. 1절에서는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의 복음으로 인한 승리, 2절에서는 말씀을 통한 축복 그리고 3절에서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천국 소망으로 인한 기쁨,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찬양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원곡의 의도대로 어찌 찬양 안 할까(How Can I keep from singing)라는 절대성을 강조하며 찬양을 통한 고백에 절정을 이루게 합니다. 이 곡이 한국 교회로 처음 소개가 된 것은 성결교회 최초의 찬송가인 "신증 복음가, 1919"에 소개하였고 그것을 오늘날까지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송가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하며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복음을 통한 축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앞서 미국의 교회사를 통해 보았듯이 우리 민족은 아시아의 중심 국가 중 가장 나중에 복음이 전파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선교지로 삼아 복음을 전파하는 중심국가로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십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일에 관한 여러 분야에서 빨간불이 켜지며 경고하는 것을 그냥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혼란의 극치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당위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 로우리 목사님을 통해서 주는 모든 환경에서 평안과 소망으로 이끄시며 고요함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나중에 사사오 목사님을 통해 주는 복음으로 인한 승리, 말씀을 통한 축복 그리고 천국 소망으로 인한 기쁨이 이 찬송가에 실려있기에 이 찬송의 고백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체스터턴(G. K. Chesterton,1874-1936)이 당시 세계와 기독교 전통으로 인한 혼란함 속에서 깨달았던 "비록 오늘날 세상이 주는 무자비한 혼란함 속에서 어떻게든 세상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든 세상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고 했던 그의 결심을 많은 혼돈 속에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에게도 깨달음이 되어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어찌 찬양 안 할까(How can I keep singing)의 진솔한 찬양고백을 마음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