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 참신한 한국 SF 작품
부차적 서사 요소 더 집중 경향
대중문화, 트랜스휴머니즘 확립
영지주의와 연금술 목적과 비슷 

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부산행>, <지옥>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영화 <정이>를 분석합니다. 배우 故 강수연(윤서현)의 마지막 필모그래피가 된 이 영화에는 배우 김현주(윤정이)와 류경수(상훈) 등이 출연합니다. 아주 조금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대중문화 속 인공지능: 장르문학화된 한국 대중문화의 서사적 문법을 따른 영화 <정이>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의 서사는 강인공지능 휴머노이드와 마인드 트랜스퍼(mind transfer), 즉 정신 전송 기술을 중심에 두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작품들이 이미 무수하게 존재하고 있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발표한 이후 인공지능은 영화, 드라마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중은 인공지능이라는 소재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 로봇과 정신 전송이라는 소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라는 주제는 생소하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2023년 지금은 강인공지능, 정신 전송,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재고라는 주제의식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최근 나오는 인공지능 관련 작품들은 서사의 부차적 요소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정이> 역시 마찬가지다. <정이>의 강점은 영화 전체에 꽉 들어차 있는 오마주이다. 이 영화는 설정부터 세부 장면까지 모두 유명한 SF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요소들을 차용해 조합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 환경 위기를 피해 이주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스페이스 콜로니인 쉘터와 이 쉘터들 간의 전쟁은 <기동전사 건담>의 우주세기 설정을 연상시킨다. 죽은 인간의 정신을 새로운 신체나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에 복제해서 옮기는 방법,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의 복장과 전투 방식은 미국의 사이버펑크 소설과 드라마 <얼터드 카본>과 흡사하다.

인공지능 로봇 기업이 작품 주무대이고 이 무대 안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이 서사의 줄기를 이룬다는 점은 <아이 로봇>과 일치한다. 그 외에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웨스트월드>의 설정이나 장면에 대한 오마주 역시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이
▲정신 전송 기술을 소재로 삼는 드라마, <얼터드 카본>.

그래서 이 영화는 SF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참신하다. 비슷한 주제의 영화, 애니메이션 속에서 한 번쯤 본 적 있는 설정과 장면들이 하나로 집약되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의 설정, 소재, 장면들을 끌어다 쓰면서 소소한 변화를 주는 서사 전개 방식은 최근 한국 대중문화계의 안정 지향 풍토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한국 대중문화계 전반의 장르문학화라고 성격규정할 수 있다. 영미권 판타지, SF 소설과 일본 라이트노벨에 깊게 영향받은 한국 장르문학은 이른바 '공장식' 창작법이라는 특이한 전통을 갖고 있다.

과거 한국 만화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양판형 만화나 무협지, 로맨스 소설을 보면 한 팀의 작가'들'이 서사 구조와 캐릭터는 그대로 둔 채 설정과 세부요소만 조금씩 바꿔 공장에서 기성품을 대량생산하듯 작품을 빠르게 만들어내곤 했다.

◈대중문화 속 트랜스휴머니즘: 고대의 영지주의, 중세의 연금술, 오늘날의 트랜스휴머니즘

오늘날 한국 장르문학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물론 예전 양판형 만화나 무협지가 팀 작업을 통해 제작되던 것과 달리, 최근 한국 장르소설들은 대부분 한 사람의 작가가 집필한다. 하지만 작가들이 기존에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서사 구조와 캐릭터를 채택해 세부 설정과 서사요소만 바꿔가며 빠르게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한국의 양판형 만화나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정이> 역시 이런 제작방식을 따른다. 그래서 작품의 실험성과 창의성은 떨어지지만 흥행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 대중에게 익숙한 서사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이 심하게 조악하지 않는 한,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의 흥행성적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한국 대중문화계 전반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고수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기존 기술을 기발하게 조합하고 가공해서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에서 인공지능 로봇 및 정신전송과 관련된 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곧 세계 대중문화계가 인공지능과 관련해 하나의 확고한 주제의식 혹은 의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의도는 바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인간을 개조해 기존 인류가 가지고 있던 신체적·정신적 약점들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인간이해 방식을 말한다. 

정이
▲트랜스휴머니즘을 반영하는 영화, <정이>.

근래 트랜스휴머니즘의 태동은 서구에서 기독교 문화전통의 약화와 연관되어 있다. 과거 인간을 개조해 신체능력을 향상시키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 혹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모두 비기독교적 사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유럽에서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융성했던 연금술은 고대 영지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영지주의는 인간에게 감추어진 만물의 존재 원리를 종교와 철학의 힘을 빌려 엿보려는 시도를 통칭한다. 그래서 영지주의는 신비주의와 철학이 기묘하게 결합된 방식으로 발전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과 교부들은 영지주의의 교회 내 유입을 철저히 막으려 했으나, 중세로 넘어와 가톨릭 신학이 혼탁해지면서 영지주의 전통은 기독교 문화와 기묘하게 뒤섞이며 존속할 수 있었다.

존재의 신비를 파헤치려는 영지주의가 연금술과 결합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값어치없는 물질로부터 금을 뽑아내려는 시도, 연금술은 단순히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발전한 기술이 아니다.

인류는 금이 고대로부터 가장 희소하며 완전한 물질이라고 믿었다. 연금술로 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곧 존재의 신비를 파헤친 깨달음의 증거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저명한 연금술사 파라켈소스(1493-1541)를 비롯한 근대 초기 연금술사들은 불완전한 물질에서 완전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면 인간의 존재를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기술, 즉 호문쿨루스(homunculus) 제작 기술로 전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문쿨루스는 단순히 작은 인간이 아니라,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세계의 존재 원리를 체득한 완벽한 지성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과 문화가 서구 사람들의 의식 전반을 지배하던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호문쿨루스 창조에 대한 전망과 기대감은 하나님의 섭리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연금술과 호문쿨루스 사상은 자연과학에 한 발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독교 문화와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구 기독교 사회는 여전히 인간을 창조하고 강화하려는 사상이 비기독교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이
▲<정이>의 결말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인간 개조와 강화, 죽음의 극복에 우호적인 연상호 감독의 시선을 담아낸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이런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이 그토록 비극적인 것은 인간을 개조하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비인간적 처사라는 당대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정이>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대중문화 작가와 제작자들은 인간의 개조, 강화 시도를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이>에서 뇌사 상태가 된 어머니를 인공지능 로봇으로 복제하려는 윤서현(강수연 분)의 시도는 결국 어머니의 모성과 사랑을 절실하게 깨닫는 인간미 넘치는 결말로 귀결된다.

<정이>의 결말은 오늘날 대중문화계에서 점차 영향력을 증대해 나가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