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미화 없이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 평가
영화 곳곳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소개돼
항일 무장투쟁과 하얼빈 의거 신학 논란 가능
복음 전파한 사도들 침략 앞에 폭력 대응 않아 

박욱주 박사님의 올해 마지막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을 분석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뮤지컬 주연을 맡았던 정성화(안중근)를 비롯해 김고은(설희), 나문희(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조재윤(우덕순), 배정남(조도선), 이현우(유동하), 박진주(마진주) 등의 배우가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영웅으로서의 안중근: 영화 <안중근>의 훌륭한 역사 고증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그 이후의 행적을 다룬 뮤지컬 <영웅>이 영화화되어 지난 21일 개봉했다. 작품 연출은 <해운대>, <국제시장> 등으로 널리 알려진 윤제균 감독이 맡았다.

원래 이 영화는 2019년에 촬영을 마치고 2020년 3월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최근에서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원작 뮤지컬 <영웅>은 2009년 초연된 후 10년이 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뮤지컬의 대표곡 '누가 죄인인가'는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어 뮤지컬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

원작 뮤지컬 <영웅>이 대단한 인기와 유명세를 누렸던 만큼, 영화 <영웅>도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원작 뮤지컬의 주연 정성화가 영화의 주연을 맡아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개봉 초반인 현재 전 세계적 규모의 블록버스터 <아바타: 물의 길>과 스크린에서 경쟁을 하고 있어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개봉 후 비교적 양호한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다.

실존 인물의 삶을 그려내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은 당연히 극적인 연출을 가미해서 상업성을 확보하게 마련이다. 영화 <영웅>도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영화적 연출이 곳곳에 가미되어 있다.

이는 안중근의 사상,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관객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실제 역사와 영화적 연출을 착각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가져온다.

영화 속 안중근 의사의 행적에 대한 묘사는 역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상 인물 설희(김고은 분)를 통해 명성왕후의 행적과 성격이 과도하게 미화된 점은 아쉽게 여겨진다.

명성왕후는 한국 기독교계 입장에서 보면 개신교 선교의 길을 열어주고 미국 선교사들을 지원해준 고마운 인물이지만, 우리 민족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심한 사치를 일삼고 무속에 의존하며 외척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를 조장하여 흥선대원군이 힘겹게 일궈낸 개혁의 성과를 무산시키고 나라가 열강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만든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명성왕후의 부패한 정치행적에 대해 안중근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공적으로 한국의 군인으로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타국의 왕후를 무참히 살해한 일이 심각한 범죄이자 침략 행위라는 사실을 지탄하고 그 부당함을 널리 알리려 했다.

이렇게 뮤지컬과 영화 <영웅>은 명성왕후에 대한 다소 편향적인 묘사만 제외한다면, 비교적 준수한 역사 고증을 선보이고 있다. 실존 인물 안중근을 둘러싼 1900년대 초반 한국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한 명의 가톨릭 신앙인이자 독립운동가에 대해 과도한 미화 없이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영웅
▲실제 안중근 의사 사진(왼쪽)과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분장한 영화 <영웅> 속 정성화의 안중근(오른쪽).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신앙과 폭력 사이 안중근의 고뇌 

이렇게 별다른 과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과 영화 <영웅> 속에 묘사된 인간 안중근은 범상치 않은 영웅의 풍모가 물씬 풍겨난다. 이는 원래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삶과 성품 자체가 애국심과 정의로운 신념으로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영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안중근의 모친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묘사이다. 안중근은 작품 곳곳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소개된다. 독립의군에 가담하기 위해 타지로 떠나면서 가족들에게는 로마 교황청에 방문하겠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나라와 독립군 동료들을 위해 묵주를 쥐고 기도하는 장면 등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안중근은 10대 후반 세례명(도마)을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 죽을 때까지 독실한 신앙을 유지했다. 이러한 사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교과서와 미디어의 묘사가 애국심 넘치는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에만 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안중근은 독립군에 가담하기 전까지 가톨릭 신앙 정신에 따라 민중 계몽과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당시 민족 지도자로 명성이 높았던 안창호 역시 개신교 신앙을 바탕으로 무장투쟁이 아닌 교육과 계몽을 통해 국력을 길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5년 12월 안중근은 진남포에서 열린 안창호의 강연에 찾아가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고 그 가르침에 크게 감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영웅
▲안중근과 안창호. 안중근이 민족의 교육과 계몽 활동에서 독립의 길을 찾던 1905년경, 두 사람은 기독교 신앙과 비슷한 독립운동노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친분을 맺은 바 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화 행보에 속도가 붙자 안중근은 군사력에 의존하는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애초 그에게 교육과 계몽을 통한 독립의 길을 가르쳐준 프랑스인 르각(Le Gac, 곽) 신부는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하며 신앙인의 폭력 사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중근이 항일 무장투쟁에 나설 때는 나름 신앙의 영역 안에서 군사력 사용을 정당화할 명분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학계 전체에서 부당한 침략을 저지하는 방어전에 참가하는 것은 정당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 침탈이 군사력을 앞세운 무장 침공인지, 아니면 국가 수뇌부의 매국 행위에 의한 신민지화였는지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안중근의 항일 무장투쟁과 하얼빈 의거는 신학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평가할 때 우리는 통상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그의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투쟁을 칭송해 왔고, 그래서 그의 기독교적 고뇌를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뮤지컬과 영화 <영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애초 이 영화는 서사의 출발점부터 안중근이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시점이다. 영화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의 무장투쟁과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지극히 정의롭고 정당하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항일의병 활동에 인생을 바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악랄한 제국주의 침탈자를 처단하며, 죽기 직전까지 일제의 악행을 공적으로 만방에 알리는 법정투쟁에 몰두하는 그의 삶은 '나라를 위한' 순교자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영웅
▲영화 <영웅> 속 하얼빈 의거.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안중근 의사.

그러나 그의 영웅적 독립투쟁이 성경적 신앙에 근거한 희생과 헌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독교의 순교자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결코 폭력을 이용해 신앙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로마 제국의 악랄한 식민지 지배를 견디며 예수의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들의 경우, 단 한 사람도 제국의 침략 앞에 창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갚아주실 것을 묵묵히 기다리며 오로지 복음 전파와 구제를 통해 예수를 증거하는 데 전념하다가 묵묵하게 순교를 받아들였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