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 ) 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성경에 나오는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딸만 5명만 남기고 죽었습니다, 당시는 아들이 없으면, 땅 분배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슬로브핫의 딸들이 당당히 모세에게 나아갑니다. 아버지가 반역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아들만 없었습니다. 그런데 땅 분배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자기 생각으로 말하지 않았고 다수결로 밀어붙이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슬로브핫은 죽었으나, 평소에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귀하다는 교육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딸이라 할지라도, 남이 아닌 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 어르신들은 딸을 낳으면 절망을 했습니다. 그 절망이 딸들에게 전달이 되어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슬로브핫은 아니었습니다. 4째 딸이 "밀가"인데 끝순이도 아니고. 말자도 아니고."여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귀하다는 뜻입니다. 5째 딸 이름이 "디르사"인데 "기쁨"이란 뜻입니다, 섭섭이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늘이 없이 당당하게 자란 것입니다. 많은 딸이라도 건강하게 키우는 법은 아버지와 소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남자상이 세워짐으로. 결혼 후에도 당당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면 최고가 되어 어떤 상황에도 명확하고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딸들에게 땅 분배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땅을 준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분배 받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지 싸워서 얻을 약속의 땅입니다. 그 땅에는 아낙 자손이 살고 있어 철옹성입니다. 남자들도 가나안 땅보고도 절망했듯이 약속을 단단히 믿지 않으면, 들어 갈수 없는 땅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탐지 후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 했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 딸들은 확신을 가진 당당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 믿음 없는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물론 현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실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딸들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에 믿음으로 살고 약속으로 살고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딸들에게 이것이 없었다면 포기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선대하십니다, 물은 섭씨4도 때 비중이 가장 높다 합니다. 얼기 직전에 가장 무거워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얼음은 물 위에 뜹니다. 만약 비중과 온도가 일치했다면, 호수는 밑이 먼저 얼어 겨울에 고기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끼게 되고, 미물조차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눌리지 말고. 당당하면 이깁니다. 이것이 믿는 자가 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