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0년대 대표적 한국 멜로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이상적 사랑을 추구하는 상우가 현실적 사랑을 추구하는 은수와 함께 작업을 하다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사랑하는 은수에게 버림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버림을 당할 때 상우가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2019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의 이혼율은 38개 회원국 중 9위이고 아시아 국가중에서는 1위입니다. 1991년에 인구 1000 명당 이혼한 사람의 수가 1.1 명에 불과하던 것이 2016년엔 2.1 명으로 치솟았고, 특히 혼인 지속 기간이 20년 이상인 사람들의 이혼이 늘어나 전체의 47%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었지만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60대에도 행복하지 않으면 이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랑을 하기는 했었던 것일까요?
'봄날은 간다'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요?" 은수가 상우를 유혹하면서 한 말인 동시에, 은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수의 사랑은 라면 한 그릇과 같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후끈해지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사랑, 그래서 잘 식기도 하고, 어려움을 만나면 쉽게 변하기도 하는 그런 사랑...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대충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람들이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지는 것입니다. 혼수 때문에 헤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돼서 헤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요?
창 3:1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범죄한 하와에게 임한 저주의 말씀입니다. 말씀하시기를,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고 하십니다. 남편을 너무 좋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타락한 죄성으로 인해 늘 남편의 자리를 탐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남편처럼 늘 결정권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시기를,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내가 그렇게 원할 때마다 남편이 힘으로 제압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가정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망가져버린 이 시대 가정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엡 5:24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아내들과 남편들이 그렇게 대립하고 투쟁하는 길을 갈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는 너희들은 순종하는 아내가 되고 희생하는 남편이 되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의무를 넘어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