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이 그려내는 기독교인들
미성년자의 성을 미끼로 남성들을 꾀어 장기를 밀매하는 범죄집단. 잔혹한 범죄인만큼 거래도 은밀하게 이뤄지죠. 거래가 이뤄지려는 찰나, 지진이 나는 바람에 거래에 가담한 이들 모두가 무너진 건물에 갇혀 버립니다. 살아서 나가려는 이들 간에 사투가 벌어지고, 살육의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리죠. 범죄집단의 핵심 인물인 소녀, 그리고 잠입수사 중이었다는 경찰관. 이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조하게 됩니다.
소녀는 어쩌다 이런 흉악한 일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털어놓는데요. 그 사연이 기가 막힙니다. 청소년범으로 보호시설에서 지내던 소녀를 훈육 담당 목사가 범죄집단에 팔아버린 것이죠. 알고 봤더니 그 목사는 인신매매에 연루된 브로커였던 겁니다.
몹쓸 짓을 한 목사에 이어, 뜬금없이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등장해서 기괴한 언행을 합니다. 그녀는 '하나님', '지옥', '십자가', '구원'과 같은 말을 연신 입에 올리지만 밉살스러울 뿐입니다. 게다가 장기를 밀매하러 온 이유가 '투병 중인 자기 교회 성도를 돕기 위함'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을 정도지요. 심지어 이 여성은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불필요한 사족처럼 보임에도 카메라는 집요하게 그녀를 비춥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녀에게 경찰은 '아멘'이라고 대답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은 극의 전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개연성 없는 짓궂은 장면들은 기독교에 대한 조롱과 야유로 보입니다.
조롱과 야유, 새삼스럽지도 않아
기독교를 향한 미디어의 냉소적 시각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Over the Top'의 약자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칭) 미디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기독교 진영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하곤 합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마음이 상한(?) 기독교 측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며 반박했음도 익히 알려진 바인데요. 저들이 그려내는 기독교인들이란 한결같이 위선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최근작인 <수리남>은 아예 '한인교회의 목사가 사실은 거대 마약조직의 수괴였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할 정도니까요. 물론, '<수리남>에서 악당은 어디까지나 목사로 신분을 위장했을 뿐, 진짜 목사가 아니니까 너무 흥분하지는 말자'는 자조 섞인 푸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영화 속 악당들이야 겉으로는 근사한 직업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몸값>의 경우는 조금 유별납니다. 기독교가 다뤄져야 할 아무런 개연성이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비하하는 것이 이 작품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 텐데도, 굳이 애꿎은 기독교를 불러내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냉소를 날립니다. 주인공 소녀는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목사를 가리켜 '목사년'이라고 부릅니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렸을 뿐, 기독교를 향한 <몸값>의 태도가 아닐까요.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던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후,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며 광기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기독교의 몫
유감스럽게도 대중문화가 기독교를 그려내는 작금의 추세가 쉽사리 변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씁쓸한 유행(?)을 중단시킬 가장 좋은 방법이란 그들을 향해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따가운 현실에서 기독교가 오명을 벗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신분에 부합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일 겁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신뢰하고 짓궂은 야유와 냉소를 그칠 테지요.
<몸값>은 범죄를 소재로 하는 고어(Gore)물이면서 재난물의 외피를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르적 특성은 전염병으로 인해 누적된 불안감과 피로감,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를 통해 더욱 불거진 사회적 불신, 이렇듯 복합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기호에 부합할 테지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몸값>이 기독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대중문화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기에 앞서, 기독교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처지입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가 처방전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계속해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요. 이를 타개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기독교의 몫입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언 27:2)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