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말하는 안식일은 일을 안 하는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진정한 의미는 말씀의 내면화, 사람과 관계 내면화, 사물과 내면화, 속사람의 터치가 이루어지는 속사람이 변화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난리를 칩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내면화를 모르는 바리새인은 겉에만 관심 있습니다. 오직 고발의 빌미를 잡으려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화 보다는 너의 외면을 문제 삼는 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천국백성이 되고자 원하여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말씀의 내면화를 묻습니다.
네 속에 들어간 말씀이 뭐냐? 는 겁니다. 이렇듯 안식일은 말씀이 밖에서 안으로 쑥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또한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시간입니다. 오늘날 언어폭력으로 시달리는 전화 상담원들은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전화 연결 음을 가족 목소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남편 목소리로, 아내의 목소리로, 엄마의 목소리로, 딸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그러자 막무가내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확 줄었다 합니다.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리가 자기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밖에 있는 소리가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람은 말씀의 소리만 들어와도 변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말씀이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씀으로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찬송으로, 기도로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또한 함께하는 동역 자들의 소리가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물질의 의미가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참으로 복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오늘의 주일을 육체가 쉬고 노는 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면화, 인격의 내면화, 축복의 내면화를 놓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의미와 뜻을 바리새인들처럼 끌어 내리려는 "삽질"로 끝내지 말고 "가치"가 들어오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안식일의 의미가 우리의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주님은 속사람 강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겉은 늙어 졌어도 속이 젊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매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연조가 쌓여 간다는 거나, 신앙의 가문이 되었다거나, 신앙의 직분이 있다는 것이 신앙의 외면화로 바리새인 같은 삶으로 변화 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말씀이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소리로 들림으로 속사람의 내면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