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1) 연령, 교회 직분, 교인 경력, 봉사의 분량과 무관하다.

어릴 적에 한국에 살 때에 우리 동네에 한 정신박약아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18 세쯤 되었지만 그의 정신 상태는 약 세 살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는 덩치가 아주 크고 체중도 약 120 킬로그램쯤 나가는데 종종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흙을 먹는가 하면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말썽을 부렸다. 그의 어머니는 외아들인 그를 고치기 위해서 재산을 거의 다 탕진했고 그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일을 수습하느라 늘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이 아이는 늘 웃는 얼굴로 말썽을 부렸는데 결국 19 세가 되던 해에 사망했다. 그는 신체가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신앙의 성숙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교회에 다닌 지 오래 된 사람은 모두 영적으로 성숙할까? 교회에서 각종 직분을 가진 사람은 모두 성숙한 성도들인가? 교회 안팎에서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모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일까? 그럴 가능성이 많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서 교회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태 교인으로서 평생 예배당에 다니고 또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의 증가와 무관할 수 있다.

만일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은 모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아마 신학 대학교 교수들이 가장 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신학교에서 성경이나 성경과 관련된 과목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속단할 수 없다. 일부 신학자들 중에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하거나 성경의 신뢰성을 믿지 않고 단순히 설화나 이야기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오류가 없는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기독교의 책"으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만일 구약 성경의 오경의 저자를 모세라고 답변하면 학점을 주지 않는 신학교도 있는데 반면에 오경은 여러 사람들이 자료를 수집하여 편집한 것이라고 답변해야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단순히 문학과 철학 책으로 분류하여 그렇게 가르치는 교수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 복음적인 "이상한 신학"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들도 있는 것이다.

어느 교회 학교에서 있던 일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교사가 출애굽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 아동이 손을 들고 말했다. "신학교에 다니는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 홍해라고 번역한 것이 실제로는 홍해 (Red Sea)가 아니라 갈대 바다 (Reed Sea)이기 때문에 물의 깊이가 무릎 밑에 찬다고 하는데요." 교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멋진 답변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놀랍게도 그렇게 얕은 물에 애굽 군대의 말들이 다 빠져 죽었다니 그거야말로 기적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과 엄밀한 의미에서 영적인 성숙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3) 겉으로 나타나는 활동이 성숙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교회에서는 대체로 사람들 눈에 많이 띄는 봉사에 활발한 사람이 교회 지도자로 뽑힐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장로를 뽑기 수 개월 전부터 경쟁적으로 어떤 특별한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즉 교인들과 눈이 마주칠 기회가 많은 부서 예를 들자면 주일에 자동차 주차를 안내하는 부서에 경쟁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주일 예배가 여러 번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는데 주차장 봉사를 하면 나중에 장로도 뽑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교회의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목사와 교인들에게 칭찬과 박수를 받기 위해서 하는 속셈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는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목회할 때에 어느 주일에는 한 여자 분이 점심 식사 후에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고 뒷정리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낯이 익지 않은 분인데 웬일인가 하여 멀리서 주의해 보았다. 약 세 주간 동안 열심히 봉사하는데 아무도 그를 알아 주지 않자 심술을 내면서 어느 교인에게 "이 교회는 사람이 봉사를 해도 격려해 주는 사람도 없네. 사랑이 부족한 교회군요"라고 투정을 하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내 생각에 그는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봉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성숙한 것이 아니라 성숙하기 때문에 즐겁게 봉사하는 것이다.

4) 어느 특별한 체험이 아니며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종종 거북한 간증을 들었다. 약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생활이 불량하고 악행을 하던 사람이 어느 우연한 기회에 산 기도에 구경 삼아 따라갔다가 하늘로부터 "불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고 그로부터 수 개월 후에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속성이고 잠깐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물론 그런 일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급격하게 변화하여 강력한 전도자 바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변한 배후에는 그가 바리새인으로서 성경에 능하고 종교적인 열심을 가졌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순식간에 악인을 선인으로 바꾸실 수도 있는 것을 나는 믿는다. 구원받는 것이 그 한 가지이다. 불신자였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마음에 영접함으로 놀라운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오랜 기간이 지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착각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볼 때에는 오랜 수련과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순간적인 사건이다. 즉 태어나기만 하면 곧 그 가정의 자녀의 신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급격하고 현저한 변화를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점진적으로 삶이 변화한다.

그렇지만 주님을 닮아가는 영적 성숙은 순간적인 변화가 아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 수 년의 세월이 지나야 부모를 더 닮는 것과 같이 많은 기도와 고뇌와 갈등과 영적 싸움을 이기고 깊은 헌신의 과정이 없으면 영적 성숙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또한 용감한 군인이 되는 과정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군대에 입대하면 모두 군인이 되지만 군인다운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훈련하고 노력해야 비로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전쟁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군인이 되려면 더 많은 훈련과 교육과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과 같다.

5) 영적 은사를 소유하는 것과 다르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으나 미숙한 교회다. 영적 은사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주시는 신비한 능력이다. 흔히 "성령의 은사"를 말하면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마치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이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은사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두 받는 것도 아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4-7).

그 가운데 고린도 교회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고 언변과 지식이 풍부한 교회이다 (고전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으로 전혀 성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1). 즉 그들은 다양한 은사와 지식을 추구하는 교인들이지만 영적으로는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다만 부드러운 젖만 먹는 상황인 것이다. 자칫 "형통 복음"이 되거나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등의 잘못된 설교에 휘말려서 영적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이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교회의 상황을 재고해 본다. 많은 교회들이 단기간에 성장하여 교인들이 많아지고 교회의 예산도 늘고 거대한 건물을 세우기도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많은 교육과 훈련 과정도 생겼다. 그러나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제자 훈련의 학과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서 곧 훌륭한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생각은 오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흥회와 세미나가 있지만 교회들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여 불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보는 것이다. 마치 집안의 작은 아이들이 서로 아빠 무릎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도 같고, 서로 높은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은 결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자의 모습이 아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에 따라 영적 성숙도를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