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착한 사람이 천국을 가야지 아무런 선행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는 말도 안 된다고 비평합니다. 그만큼 불공평하고 배타적인 하나님도 없으며 그런 하나님은 틀렸으니 아예 믿을 필요가 없다고 반발합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로 그런 주장만큼 불합리한 것도 없으며 또 착한 사람을 천국에 보내는 하나님만큼 불공평한 신도 없습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하얀 거짓말까지 포함되었겠지만 사람들이 보통 하루에 열 번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럼 일 년에 3,650번이고 70년이면 255,500번은 평균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럼 이보다 덜하게 되면 착한 편이고 더 하게 되면 악한 축에 듭니다.
만약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평생에 천 번만 거짓말 한 사람이 천국 가고 오십만 번 거짓말한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255,500번이라는 커트라인은 있어야 하는데, 그보다 한번만 더하여 255,501번 거짓말한 사람은 지옥 보대고 255,500번까지는 천국 보낸다면 그만큼 불합리하고 냉정한 신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거짓말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는데 그 전부를 합쳐서 생각하면 도무지 정확하게 합리적으로 나눌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평가하여 착하다 악하다로 나누는 것은 인간 사회의 질서 유지만이 목적인 도덕 법률 관습 종교의 잣대로만 판단한 것입니다. 그 잣대가 절대적 평가가 될 수 없으며 옳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감옥 안의 죄수가 감옥 밖에서 교묘하게 온갖 죄들을 짓는 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똑같은 죄인으로 점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조건 없는 용서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자기 일생을 찍은 영상을 하나님과 함께 오 분이라도 볼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어쨌든 남들보다 더 선하고 의롭다고 자부하는 자는, 최소한 평균 이상은 된다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자기 같은 착한 자가 천국 가는 것이 옳지 기독교 구원은 말도 안 된다고 끝까지 거부하게 됩니다.
반면에 신자는 도덕적으로 더 의로워지거나 종교적으로 더 경건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가난한 영적인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겸손히 인정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절실해졌기에 그분 앞에 항복한 자입니다.
그렇다고 구원을 얻었으니 안심하거나 천국보장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았으니까 더더욱 언제 어디서나 진심으로 겸손해져서 그리스도를 닮아서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노력하고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