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죄수가 되어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법인 십자가형의 기원은 다소 복잡합니다. 필자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며 십자가형의 기원을 앗수르로 봅니다. 앗수르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제국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적군을 처형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십자가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일반적 사형 제도로 운용되었고, 로마 시대에 공식적인 처형법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예수를 경외함으로 십자형을 폐지하는 4세기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앗수르는 잔인함에 있어서 창의력과 기발함을 갖춘 제국이었습니다. 정복지 주민들이 반항과 반란을 꿈꾸지 못하도록 잔인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앗수르의 포학성'이라는 소논문에서 피터 프레스카는 앗수르 군대의 잔학한 처벌법을 소개합니다. 그는 앗수르 군대는 적군의 신체(팔, 다리, 혀, 코, 귀) 절단이나 고환을 자르고, 눈을 뽑는 것을 공공연히 자행했다고 주장합니다.
앗수르의 이런 잔인성은 심리전 일부였습니다. 적군이 공포심을 느끼게 하고 전의를 상실하게 할 목적이었는데 너무 잔인한 방법을 취하자 아군 병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앗수르제국은 저항이 심한 적장(敵將)이나 적군의 주요 인물은 기둥에 박아 죽였습니다. 기둥을 세우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다음 복부를 찔러서 달아 놓았습니다. 이 사형법의 효과가 컸습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주변에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은 왕이나 정복한 장군의 세력을 과시하고 적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무시무시한 십자가형의 원조이었습니다.
십자가형(Crucifixion)의 의미는 '나무, 벽, 바위 등에 매달아 죽이는 사형법'입니다. 이런 점에서 앗수르의 매달아 죽이는 처형법이 십가자형의 기원으로 이해됩니다. 앗수르의 매달아 죽이는 사형법은 페르시아로 전수되어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적인 사형제도로 정착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매달아 죽이는 것은 장대, 나무 혹은 절벽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에서 등장하는 하만의 장대는 페르시아 제국 십자가형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페르시아의 고관인 하만(Haman)이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일 계획으로 오십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준비했습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했던 나무에 하만을 매달았습니다(에7:10). 이것이 페르시아에 매달아 사형을 시키는 제도가 성행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규빗"이란 어른의 팔꿈치부터 손끝까지의 길이 즉 약 40cm가 길이입니다. 오십 규빗은 20M나 되는 어마어마한 장대입니다. 이것이 역사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페르시아 십자가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형은 페르시아에서 페르시아 민간신앙과 만나며 한층 더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민간신앙은 땅을 자신들의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대지라고 믿었습니다. 죄인들을 땅에서 처형한다면 신이 주신 신성한 땅이 더럽혀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공중에 매달아 처형하는 십자가형이 쉽게 유행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일반화된 십자가 사형법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로 건너갔고 카르타고에서 다시 로마로 전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세계를 정복하던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 대왕이 십자가 사형법을 발견하고 그리스-로마 사회에 도입했고, 로마 시대에 국가 공식적인 사형법으로 정착했습니다. 로마에서 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인들은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반란자나 노예계급에 속하는 극악한 범죄자들에게만 적용이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형을 당한 유대인이 많습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 항전했던 유대인 수천 명이 로마군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안드레 등은 십자가형을 당했고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으므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반항한 노예, 국가 전복을 꾀한 반역자 등의 중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반항한 노예란 주인을 죽이거나 비슷한 악행을 행한 경우를 말합니다. 3차 노예 전쟁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따랐던 노예들이 십자가로 처형당했습니다. 그 노예들을 처형했던 6천 개의 십자가를 로마 최초 고속도로인 아피아 가도(Via Apia) 변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편 로마 시대에 노예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주인이 십자가 처형을 하면 큰 문제로 비화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기원전 96년 법무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사건입니다. 네로의 현조부(玄祖父)였던 그는 기원전 96년 법무관으로 시칠리아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노예가 멧돼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그 노예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 잔인함으로 질타를 받았고, 훗날 그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잔인하게 살해될 때도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조롱 받았습니다.
십자가형의 잔인함은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조롱과 멸시 그리고 모욕을 공개적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사형수가 죽기까지 고통당하는 시간은 6시간부터 4일이라고 합니다. 이 긴 시간을 발가벗긴 채 매달려 죽음의 고통을 온 세상에 공개하며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욕과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다음 호에 이 잔인한 십자가형틀이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 된 과정과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살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