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11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변화무쌍한 세상살이에도 모든 자연계의 법칙이 어릴 때의 모습과 태도는 어른이 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수십 년을 교회 다닌 분도 있고 몇 년 안 되는 분들도 있는데 신앙 연조라는 것은 기대치와 맞물려 가기 때문에 믿음 생활한 세월만큼 성숙되어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누워서 대소변도 못가린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속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고 자신이 신앙 생활한 만큼 얼마나 성숙되어져 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8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두움, 즉 죄악에 얽매여 살았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합니다. 빛은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3:19-21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비추는데 그 빛을 싫어하고 어둠으로 파고드는 이유는 스스로의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빛은 온갖 더러운 것과 잘못된 것들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지난 죄는 어떤 것이든지 한꺼번에 용서받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받아 졌으면 이젠 허물과 죄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졌다고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빛 가운데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빛의 자녀들처럼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는데, 착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의롭다는 것은 거짓이 없는 것이고 어느 곳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은 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해놓은 일이 하나님의 뜻에 들어 맞았다면 그 사람은 진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기쁘시게 해드리길 원하는 사람은 성령께 붙들려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사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받고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면 그 때부터 그 인생은 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분으로 인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인이시고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은 밀쳐내고 나라는 자신이 앞장서 나가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의 말씀은 가치 있는 열매가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해서 마귀에게 속아 이성을 빼앗기고 죄짓는 일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헬라어로 '엘 랭코'라고 하는데 '엘'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즉'하나님의 빛으로 비추어 주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죄를 죄로 깨닫게 해주라는 것이며 그 죄를 지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영혼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권면할 때는 그 잘못을 자신의 생각으로 지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권면하는 사람이 상대방보다 더 잘 믿는 것처럼 느끼게 될 때 듣는 사람은 자존심이 상해서 그 말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책망하라는 말이 하나님의 빛으로 그 사람에게 비추어 그가 빛에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잘못된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2절을 보면 차마 입에 담기도 거북스러운 엄청난 죄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었더니 그 인생이 빛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잘못된 것과 부끄러운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빛의 자녀로 회복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는 것은 확실히 예수님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15-16절에 '지혜 있는 자되어 세월을 아끼라'는 뜻은 전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는데 그 뜻을 몰라보고 죄악을 일삼으며 살았던 잃어버렸던 세월을 다시 돈을 주고 되사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받들고 섬김을 다할 기회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지난날 그 많은 세월을 영혼구원에 힘쓰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세월을 아끼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에서는 그저 몸을 내어 맡겨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충만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야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며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과 형편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심령에서는 찬송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함 때문입니다.
19-21절에서"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피차 하나님을 더 잘 섬겨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간혹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거나 양보하고서라도 서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네 주장도 내 주장도 아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경외(敬畏)한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피차간에 복종함으로 성령의 지시에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모든 조직들이 항상 성령에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실 것이며 그 뜻에 모든 주장들을 버리고 피차가 성령의 뜻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천국을 이루어가는 가장 지혜롭고 보배로운 믿음이 되고 성령이 계속 충만하게 하실 수 있는 가장 민첩하고 슬기로운 신앙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