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이준수 목사

현재 제가 살고 있는 Buena Park 거리에는 홈리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골목길 여기저기에 전보다 많은 수의 홈리스들이 거적때기를 깔고 누워있거나 또는 떼지어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또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카트를 갖고 버스에 타려다가 운전기사에게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아마 추운 겨울이 되니, 또 COVID-19 사태의 영향으로 다른 곳에서 살던 홈리스들까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남가주로 몰려들어 이 지역의 홈리스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처럼 거리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홈리스들을 바라보며, 저는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전해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험한 산길에 한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돈도 빼앗기고 중상을 입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와 같은 동족이면서 경건하고 의롭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못 본 채 그냥 지나쳐 버렸지만, 유대 민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한 사마리아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그네를 구해내 상처를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돈을 더 주면서까지 그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합니다. 이 예화를 마치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가 나그네의 진정한 이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예화에서 우리가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그 험한 산길에서 강도를 만나 피해를 본 나그네가 한 둘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강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여 여행객들을 공격해 아마도 그 산길에는 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즐비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나그네를 돕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 것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크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자신들도 언제 강도들에게 공격받을지 모르니 그 위험한 지역을 얼른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그들도 처음엔 강도 만난 나그네를 도와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하도 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만성이 되고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식어버려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봐도 그냥 지나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현재 우리가 홈리스들을 만나도 별로 돕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제사장과 레위인과는 달리 사마리아인이 베푼 선행에는 항상성과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나그네를 돌본 것은 이번 한번 뿐이 아니라 전에도 동일한 선행을 여러 번 반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꾸 저지르다 보면 습관화, 상습화가 되어 더 이상 죄의식도 안 들고 점점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처럼, 선행도 계속 반복하면 몸에 배게 되어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화가 되고 더욱 크고 위대한 선행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이방인의 피가 섞였다 하여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던 민족이었는데, 이 사마리아인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강도 만난 나그네를 돌본 것은 자신의 고난과 아픔을 넘어 자기보다 더 연약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는 점에서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말씀을 선포하고 따스한 사랑과 위로를 베풀라는 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에 담긴 예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단지 한번으로 끝나는 선행이 아니라 항상성과 지속성을 지닌 일상적인 선행,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실천을 요구하시는 가장 크고 위대한 계명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상력을 동원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니, 주변의 홈리스들에 대한 저의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홈리스들을 마주쳐도 그냥 지나쳐버렸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God bless you. Jesus Christ will be with you always!!"라는 말을 꼭 전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내 손을 꼭 잡고 "Oh, thank you. God bless you, too!!"라며 무척 고마워하고 감격해 합니다. 비록 금전적으로 도울 수는 없어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6절의 말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병자를 향해 담대하게 외치던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마음이 저에게도 다가와 가슴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추수감사절 기간을 맞으며 진정 감사드리고 결단해야 할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와 축복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비록 어렵고 부족하고 연약한 처지에서도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환경과 한계를 뛰어넘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참다운 감사와 찬양을 드리도록 합시다.

저 역시 몸이 건강해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 홈리스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텐데, 장애를 입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덕분에 그들과 직접 만나 부족하나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축복이요,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뇌성마비 장애로 인해 어렵고 아쉬운 것도 많았지만 이 장애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남이 받을 수 없는 고귀한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 저의 뜨거운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우리가 기차 여행을 할 때 KTX 같은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너무 속도가 빨라 목적지에는 금세 도달할 수 있지만 창밖의 경치는 잘 못 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궁화호 같은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 주변 환경을 세밀히 관찰할 수 있고 기차에 오르는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더 커지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인간적인 안전과 평안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베풂의 기쁨을 깨닫고 참다운 감사를 알며, 남에게 베푼 사랑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진정한 하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글 |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