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 <반지의 제왕>이 전설 느낌 강하다면
<듄>은 직접 제도화된 종교 이야기 건드려
각종 종교 섞은 '베니 제서릿', 우주적 영향
1960년대 이후, 미국 내 분위기 변화 반영

◈SF와 종교: 종교통합의 이상을 반영한 영화 <듄>

<듄>(Dune)은 미국의 기자 출신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5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SF소설 시리즈이다.

<듄>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SF가 아니라 인류 문화사에서 종교와 과학기술, 정치와 전쟁, 그리고 상업과 무역이 담당하는 역할을 깊이 숙고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과 유사하게 다방면의 철학적, 문화적, 사회적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소설로, 20세기 SF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듄>의 영화화는 상당한 난항을 겪었다. 소설 <듄>의 세계관과 서사 설정은 작품 속에서 무려 16,000여 년의 가상 역사를 통해 축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는 그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각본가, 감독, 그리고 제작사 사이에 영화 제작 과정에서 커다란 의견 차이가 생겨나 두어 차례 영화화가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러다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기어이 <듄>의 영화화에 성공했다. 1984년판 <듄>은 영상미나 특수효과 측면에서 SF영화계에 오래 기억될 업적을 남겼지만, 역시 서사 면에서는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 새롭게 영화화된 <듄>이 10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아 총 2부작으로 제작 확정된 작품이다. 최근 크게 발전된 CG 및 영상 기술을 동원해 만들어진 덕에 영상미 측면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적절히 반영하는 연출일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평단의 무난한 지지를 받고 있어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영화 <듄>의 서사를 지탱하는 근간은 종교이다. <듄>과 비슷한 수준의 거대한 세계관을 정립한 판타지 대작 J. R. R. 톨킨의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 역시 북유럽 신화와 전설을 기반으로 삼고 있고, 톨킨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은 종교보다는 전설의 느낌을 강하게 드러내는 반면, <듄>은 직접적으로 제도화된 종교 이야기를 다룬다.

<듄>의 서사를 이끄는 종교는 작품 속에서 전 우주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베니 제서릿(Bene Gesserit)이다. 베니 제서릿은 인공지능과 기계 몸에 익숙해져 인간의 본모습을 잃어가는 인류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껴 고도로 발전된 기계문명을 전복하고 그 위치를 인간이 다시 찾도록 하려는 광신적 종교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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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서사를 주도하는 종교, 베니 제서릿의 여성 사제

<듄>의 원작자 허버트는 베니 제서릿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설정을 창안한다. 베니 제서릿의 교리는 과거 지구에 존재했던 여러 고등종교, 즉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각종 종교사상을 통합한 결과물이라는 설정이다.

<듄>에 소개된 베니 제서릿 교리의 핵심 내용은 '인간의 역할을 기계로 대체하지 말 것'과 '인간의 정신을 모방한 기계를 만들지 말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지적, 정신적 활동은 오로지 인간만이 담당해야 하며, 인공지능을 다시 제작하지 말 것을 명하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중심에 위치한, 고도로 발전된 기계문명 시대에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가던 것, 그리고 인공지능에 심히 의존하여 예속되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을 반영하고 있다.

◈SF와 기독교: 히피 문화에 의한 기독교 신앙의 소외

그렇다 해서 베니 제서릿이 자연상태의 인간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집단은 아니다. 인공지능과 기계문명을 대체하는 '개량된' 인류의 양산이 이 종교집단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에 따라 이 종교에 귀의한 이들에게는 거의 동물의 품종 개량이나 다름없는 우생학적 실험이 가해진다. 그리고 '스파이스 멜란지'라고 불리는 특수한 물질을 통해 인간의 지능, 정신력, 직관력, 그리고 예지력을 키우는 약물 실험 역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베니 제서릿은 이를 통해 '퀴사츠 헤더락'이라는 인류의 구원자를 얻어내고자 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류의 구원자란 과거 인류가 가졌던 모든 기억과 지능, 정신력, 그리고 영감과 예지력을 한 몸에 갖춘 초인에 가까운 이상적인 인간이다.

이런 부류의 메시아 사상은 기독교 교리를 본딴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베니 제서릿은 인류의 힘으로 이런 구원자, 초월자를 만들어내겠다는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듄>의 서사는 중세 기독교와 이슬람의 모티프를 차용하면서 불교 사상을 중심에 둔 인류의 자력구원에 관한 종교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서구 종교 역사에 오랜 시간 영향력을 행사해 온 영지주의 사상 역시 관여되어 있다. 플라톤주의를 신비주의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한 영지주의는 실제 초대교회 역사에서 숱한 이단을 양산해낸 원인이 되는 종교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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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의 주인공이자, 종교집단 베니 제서릿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정신적 능력을 갖춘 인간 폴 아트레이드(티모시 살라메 분.

<듄>의 종교 이야기가 주로 불교적이고 영지주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데는, 이 작품을 연재하던 당시 원작자 허버트를 둘러싼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

소설 <듄>의 연재가 시작되던 1965년은 미국 사회 내에서 조금씩 히피 운동이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히피 운동은 당시 미국 서부에 유입된 인도와 일본의 종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던 일본 선불교와 티벳 불교의 가르침은 소설 속에서 인간 정신의 고양과 우주적 일치에 대한 모티프를 제공했다.

또 마리화나를 통해 집단 환각상태에 빠지기 일쑤였던 히피들의 행각은 스파이스 멜란지라는 중독성, 향정신성 물질의 설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설정들을 통해 <듄>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무한한 진화 및 진보를 믿는 히피들의 종교적 이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애초 <듄>의 역사적 배경이 인류가 종말에 이르지 않고 1만 년 넘게 우주 전역에 퍼져나가 생존하는 방향으로 펼쳐진 것도 인류의 자주적인 진보와 번영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신을 배제한 채 인류 스스로 이뤄낼 순수하게 인간중심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존 레넌의 노래 'Imagine'에 언급된 바 있는 종교 없는 세상에 대한 이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듄>의 종교, 베니 제서릿은 신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삼는 신념의 체계이다.

결국 1960년대 소설 원작으로부터 이번 2020년대의 영화까지, <듄>이라는 작품의 탄생과 흥행은 미국 내 기독교 신앙의 문화적 영향력 약화를 표시하는 문화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인간의 현실과 삶을 변혁시키는 진지한 신-인 관계 형성 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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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에서 인간의 정신적 힘을 증진시켜주는 물질, 스파이스 멜란지. 히피들이 환각에 빠지기 위해서 사용하던 마리화나에 대한 비유로 자주 해석된다.

히피 문화운동의 확산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엄밀한 영적 실상과 진리를 담은 계시가 아니라 잘 짜여진 종교적 서사 체계 취급을 받게 된다. 이 시기부터 성경은 그저 대중문화에 여러 유용한 모티프를 제공해주는 신화나 전설 수준의 문헌으로 취급되어왔던 것이다.

그에 비해 불교나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 같은 종교들은 인류의 앞날을 이끌어갈 잠재력을 가진 위대한 사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듄>의 종교서사는 이처럼 196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는 미국 내 종교적 분위기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