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기 선교사들 1890년 조선성교서회 조직
한글 활용하면 선교 활발해질 것이라고 확신해
표음문자 한글, 자음·모음 알면 누구나 읽고 써
선교사들 통해 한국어 문법과 철자법 체계 잡혀

오래 전 창제돼 지금도 전 세계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류'의 중심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기간 홀대받던 '한글'의 보급에 힘쓴 초기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공헌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창립 130주년을 기념해 한글날을 앞둔 5일 오후 3시부터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 간행물'이라는 주제로 서울 정동 구세군 정동1928 아트센터 이벤트홀에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창립 130주년은 지난해였으나, 심포지엄은 코로나19로 1년 연기해 이날 실시됐다.

심포지엄에 앞서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은 "한글이 국문, 곧 나라 글자로 공식 인정된 것은 1894년으로, 훈민정음이 창제된지 450년이 지나서이니 참으로 때늦은 일"이라며 "1890년 문서선교기관으로 창립한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번역한 『셩교촬리(聖敎撮理)』 출판을 시작으로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보건·위생·지리·수학에 관련된 책, 번역 소설, 한영자전 등 한글 서적을 발간해 백성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중심에 있었다"고 축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허경진 명예교수(연세대)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교양·문학 도서'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기독교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인들에게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다양한 형태의 쉬운 한글 책으로 번역·출판한 것"이라고 했다.

대한기독교서회 학술 심포지엄
▲강연하는 허경진 교수. ⓒ유튜브

허경진 교수는 "한글을 아는 독자들은 무엇이든 읽을 준비가 돼 있었지만, 읽을 책이 없었다. 읽을거리가 없던 한국인들에게 서회의 출판물들은 좋은 읽을거리였다"며 "선교사들이 선교에 적합하다고 감탄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이 배우기 쉽고 읽기 쉬운 것을 알게 된 게일은 너무 감격하여, '한글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 400년이나 기다려왔다'고까지 말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게일 선교사(James S. Gale, 1863-1937)는 저서 『전환기의 조선』에서 "한글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제일 간단하다. A.D. 1445년 발명돼 조용히 먼지투성이의 시대로 자기의 세월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었겠는가"라며 "여자들조차도 한글을 한 달 또는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에 배울 수 있었으니, 그렇게 값싼 글자를 무엇에다 쓸 것인가?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에 의해 그것은 신약성서와 다른 기독교 서적을 위해 준비된 채 자기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허 교수는 "선교사들은 문맹률이 높은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한국의 문맹률은 교육과 정비례하지 않음을 간파했다"며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여성이나 일반인들도 한글은 집에서 배울 수 있고, 그들이 책을 좋아하여 성서나 기독교 서적을 받으면 열심히 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다.

또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90년에 조선성교서회를 조직한 이유는, 한글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전도서를 만들어 팔 수 있고 선교가 활발해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한글은 소리나는 대로 쓰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 28자를 알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한기독교서회
▲대한기독교서회 최초 건물 모습.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허경진 교수는 "한글은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저절로 배워지다 보니, 철자나 문법을 가르치고 배울 기회가 따로 없었다"며 "같은 책을 철자가 다르게 베끼더라도 읽고 뜻이 통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던 초기까지도 통일된 철자법이 없었고, 선교사들은 그런 상태에서 한국어를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번역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허 교수는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송기용·주시경 등이 토론과 시행착오 끝에 한국어 표기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며 "역설적으로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한국어 문법과 철자법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글로 서적을 발행하려면 한글을 체계화하는 작업, 즉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책과 사전부터 필요했다. 초기에는 한국어 교재가 없어, 철자법이나 발음을 한국어 교사의 개인적인 언어생활에 의존했다"며 "이 시기 한국어 사전은 독자적으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찾아보기 위한 이중어 사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1890년 일본에서 출판된 언더우드의 『한영문법(An Introduction to the Korean Spoken Language)』은 한국어 문법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기보다, 학습자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라며 "한국어 학습자와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언더우드는 더 좋은 문법서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자신이 1914년 개정판 『션영문법』을 예수교서회에서 출판했다"고 말했다.

한글 성경 한글셩교젼서 존 로스 이응찬 케임브리지대학
▲최초 한글 신약 합본 성서인 <예수셩교젼서>. ⓒBBC 코리아 캡처

허경진 교수는 "이 시기 한국어 사전은 독자적으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찾아보기 위한 이중어 사전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인보다 선교사들이 먼저 사전을 편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 교수는 "찬송가는 문학과 음악이 합해진 서적이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13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사랑받은 책은 찬송가일 것"이라며 "성서공회에서는 한글 성서와 국한문 성서를 함께 출판했는데, 찬송가는 초기부터 항상 한글로만 출판했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일본어 사용이 강화되면서, 결국 한글 찬송가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일본어로 찬송가를 읽고 부르게 하였으므로, 서회에서도 더 이상 출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선교사들은 '이솝우화'를 비롯해 '지킬과 하이드' 등 어린이들을 위한 서양문학 번역에도 적극적이었고, 성경을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풀어쓰는 작업(rewriting)도 진행했다. 금주·금연을 위한 절제운동이나 농촌계몽운동을 위한 서적도 펴냈고,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1929)』를 『서부전선은 조용하다』라는 이름으로 발빠르게 번역 출간하며 세계적인 반전(反戰) 분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한기독교서회 학술 심포지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당시 『서부전선은 조용하다』로 출간된 판본.

그는 "서회는 영업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사이지만, 교회뿐 아니라 병원, 학교, 감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출판물을 비치하여 책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에게 독서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도 큰 몫을 했다"며 "서회는 한자의 효용성도 인정하여, 전도서나 어린이들의 독서물은 한글 전용으로 편집해 누구나 읽어볼 수 있게 하고, 강의나 강연 교재들은 국한문 혼용으로 편집해 제한된 지면에 많은 정보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한글 전용의 큰 틀을 세우고 선교사와 한국인이 함께 번역하여 출판 시장을 넓혀간 서회는 기획과 필자 확보, 교단 연합과 지원, 편집과 판매라는 출판사의 여러 가지 필수적인 요소를 모두 확충하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들도 찾는 출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안예리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가 '근대 한국어와 게일의 한영자전'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게일(J. S. Gale, 1863-1937)은 188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40년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며 "한국 체류 동안 그는 성서 번역과 목회 활동 등 선교 사역을 담당하면서도 한국의 역사·문화·언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옥성득 게일 닙 한국교회사
▲게일 선교사(왼쪽). 

안예리 교수는 "게일은 한국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한문에 대한 조예까지 갖추고, 신조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당시 한국어의 역동성을 민감하게 포착하면서 당시 한국어 변화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전들을 남겼다"며 "1897년 요코하마 Kelly & Walsh에서 인쇄된 『한영자뎐(韓英字典, A Korean-English Dictionary)』은 게일이 편찬한 한국어-영어 이중어 사전으로 3만 5,000여 개의 표제항을 수록했다"고 소개했다.

안 교수는 "이 사전은 초판 간행 이후 두 차례 증보했는데, 1911년 조선예수교서회에서발행하고 요코하마에서 인쇄한 제2판 『한영자뎐』과 1931년 조선예수교서회에서 발행하고 중앙기독청년회(현 서울YMCA)에서 인쇄한 제3판 『한영대자뎐(韓英大字典, The Unabridged Korean-Dictionary)』이 그것"이라며 "게일의 한영자전은 선교사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활용돼 근대 한국어 어휘의 정리와 학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일의 『한영자뎐』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에 오는 선교사들의 한국어 학습에 활용됐지만, 거꾸로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에게도 활용됐을 것"이라며 "또 고전에서 비롯된 한문구부터 새롭게 나타난 외래 신어까지 당대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을 아우르는 폭넓은 어휘들을 수록하고, 각 표제항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영어를 읽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일의 『한영대자뎐』은 성서번역위원회로부터 사전 편찬 업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볼 때, 초기 성서 번역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사전에 수록된 기독교 어휘들과 초기 개신교 성서에 사용된 어휘들을 비교해본 결과 『한영자뎐』 초판에 수록된 어휘들이 이후 성서들에 반영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서신혜 교수(한양대)는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여성·아동 도서', 여인석 교수(연세대)는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보건·의학 도서'를 각각 발표했다. 토론에는 허재영 교수(단국대)와 김성연 교수(연세대)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