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청년 사역과 군선교 사역의 장애물, 징집제
청년 상당수 군복무 거치며 열심 식거나 교회 떠나
군복무 청년들 믿음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 돌입
겸손함 넘어 자기비하와 비관 빠지는 경우 다반사
모병제로 전환, 더 이상 선택 아닌 필수 사항 판단
〈D.P.〉 논란, 교회도 더 나은 군대 위해 고민 계기
▲국군의 병영생활 속 부조리와 폭력, 가혹행위를 주제로 삼은 넷플릭스 TV 시리즈, 〈D.P.〉 |
◈군대와 청년: 징집제 하에서 기독청년들이 겪는 고립과 고난
대개의 경우 군생활은 청년들의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던 여러 교회 청년들의 사례를 통해, 그리고 다수 목회자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군에 입대하기 전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들 중 상당수가 군복무 시기를 거친 후 열심이 식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통상적으로 교회들은 이 사실을 잘 밝히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유는 있다. 군에 입대할 예정이거나 혹은 복무 중인 교회 청년들을 격려하고, 군대 내 장병들을 대상으로 전도와 신앙지도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군의 거친 생활 속에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혹은 지켜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해 격려하고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신앙으로부터 멀어진 사례들을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청년부 내에서는 군생활 내내 신앙을 충실히 지켜 더욱 구체적인 인도함을 받은 전역자들의 경험담이 이어진다. 군에서 세속적 삶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새로 믿음을 갖게 된 이들의 간증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청년사역 및 군선교에 대해 분석하는 실천신학, 목회학 연구자들의 논문은 거의 항상 발전적이고 희망찬 전도 및 선교전략을 제시한다. 그 어디에서도 실패담이나 비관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여러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실제 느끼는 바로는 많은 청년들이 군복무 시기를 기점으로 신앙의 위기와 질적 저하를 경험한다.
이에 대한 통계적 접근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수치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체감상 군복무에 임하는 청년들 가운데 대략 절반 이상은 이런 어려움에 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온전한 신앙훈련을 위해서는 주일성수와 여러 모임을 통한 공동체의 교제,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며 성경을 상고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군에 징집된 장병들은 이 모든 여건들로부터 격리된다. 그래서 대부분 믿음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 돌입한다.
▲〈D.P.〉 중 한 장면. 군에 징집된 기독 장병들은 약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없이 외로운 신앙의 싸움에 돌입한다. |
군 내부에도 교회가 있고 군종 장교들이 있지만, 이들의 사역은 대개 징집된 사병들보다는 하사관급 이상 간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군에 남아있을 이들보다는, 장기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할 이들에게 사역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많은 교회 청년들이 입대 직후 교회 공동체의 도움과 보호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오직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대일 관계로만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을 잘 극복하여 오히려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기회로 삼는 이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군생활의 부담과 무게감으로 인해 신앙의 의지가 꺾여버린 이들은 자책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군복무 기간 동안 신앙을 지키는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던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거의 항상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내 신앙의 얕음을 확인했다" 혹은 "신앙의 밑바닥을 확인했다"는 괴로움 섞인 고백이다.
그리고 이런 심정을 토로한 이들 대부분에게서는 군입대 전에 가졌던 신앙의 열심과 담대함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역경 앞에서 자기 신앙의 수준을 파악하고 겸손함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군생활에서 겪은 신앙의 어려움은 교회 청년들이 겸손함을 넘어 자기비하와 자기비관으로 빠지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군대와 사역: 모병제 전환이 교회 사역과 국방에 주는 유익
이는 우리 군대 문화가 단지 세속적이고 비기독교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 더해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춰야 할 인격적 자질과 양심, 그리고 이웃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짓밟고 잠식하는 악습과 폐단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악습과 폐단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는 핵심 원인으로 징병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국군은 징집된 사병들의 생활과 처우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개선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지휘관들의 인사고과에 좋게 반영될 수준까지만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병력 충원에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 의 원작 웹툰, 김보통 작가의 〈D.P.〉. |
따라서 모병제로의 전환은 교회 차원에서도, 그리고 군내 생활문화 개선과 선진화, 그리고 군기확립 차원에서도 시급히 요청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가뜩이나 청년 인구 감소로 인해 교회 내 청년층 사역을 왕성하게 펼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징집제는 교회 청년들의 신앙훈련을 추가적으로 방해하는 주된 장애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이를 깊게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우리 국군에 대한 한국교회의 한없이 너그러운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 공산화를 저지하는 역할을 최일선에서 담당하는 까닭에, 6‧25 전쟁 이후 우리 국군은 한국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아왔다.
국방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군인들에 대한 존경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당연하게 가져야 할 태도이다.
그러나 군인들에 대한 존경이 군대 내 부조리와 악습을 당연시하고 묵인하는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특히 그런 부조리와 악습이 군의 핵심 목표인 확고하고 안정적인 국방 임무를 저해하는 데까지 이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드라마 는 징집제에 의해 유지되는 군대 내 부조리와 폐단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징집된 기독 장병들이 직면하는 신앙과 인성의 질적 저하 요소들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교회가 징집제가 배태하고 있는 여러 폐단을 애써 외면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 순복하라(롬 13:1)"는 성경의 가르침을 들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징집제는 합법적 민주 정권이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제정하고 고수하는 제도로서, 기독교인 청년들은 당연히 이 의무를 수행할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세상 권세와 제도는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 및 사회제도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는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필요와 공감대 형성에 따라 얼마든지 더 좋은 쪽으로 변경, 개선이 가능하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법률 및 제도 개선의 노력에 얼마든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민주정 체제가 이런 참여를 허락하고 권장하는 이상, 교인들은 이러한 질서에 '순복'해서 교회에 주어진 정치적 기회, 제도 개선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민간 교회의 청년 사역과 함께 보다 활발한 군선교 사역을 위해서도 모병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연무대교회 |
전 세계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기술력 중심으로 진행되는 국방력의 개념 변화, 그리고 갈수록 그 무게감을 더해가는 한미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모병제로의 전환을 위한 준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교회 청년 사역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한다면, 교회 역시 우리 국군의 모병제 전환 논의에 적극적으로 공감대를 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모병제 전환시 군에 가지 않게 되는 교회 청년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집에 자원하는 기독교인 청년들을 위해서도 유익한 면이 있다.
모병제 하에서는 말단 이등병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상당한 기간을 복무하는 직업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간부 이외에도 이들 사병들에 대한 군종 장교들의 선교와 신앙훈련 사역에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
드라마 〈D.P.〉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된 것은 단지 군생활의 트라우마를 가진 전역자들의 공감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문제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군생활, 더 나은 국방을 위한 염려와 관심이 결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D.P.〉를 통해 모병제 전환 이슈가 일부 여야 대선주자들의 관심까지 끌어낸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된다.
교회 역시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심사숙고하여, 청년 사역과 군선교 사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