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2장은 교회의 위기를 전합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는 교회 중에 몇 사람을 해하려 합니다. 첫 대상자 야고보가 순교당합니다. 야고보의 순교를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행12:3) 힘을 얻는 아그립바1세는 베드로를 체포하여 감옥에 투옥시킵니다. 이 위기에서 교회는 더욱 기도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니다. 한편 12장 하반부는 교회를 핍박했던 헤롯 아그립바1세의 죽음과 하나님 말씀이 흥왕함을 소개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헤롯 아그립바1세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하나님께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치니 벌레에게 먹혀죽으니라 (행12:21~23)' 누가는 헤롯의 죽음의 이유를 헤롯의 교만으로 설명합니다.
한편 요세푸스는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아그립바1세가 할아버지 헤롯이 만든 가이사랴 극장에서 자신의 위엄을 과시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로마 황실의 든든한 지원을 받던 헤롯 아그립바1세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면서 유대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자 그는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는 가이사랴 극장에 금과 은으로 치장한 화려한 왕복을 입고 백성들의 환호를 유도하다가 급성 복통을 호소하였고 5일 후 사망했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은 그가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사망했다고 해석합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의 아버지는 헤롯대왕이 한때 후계자로 내정했던 아리스토불로스입니다. 헤롯이 아리스토불로스를 처형하자 남편의 죽음을 본 베니게가 자녀들과 함께 로마로 피신합니다. 베니게(혹 베르니케:Bernice)는 당시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동생 드루수스의 아내 소 안토니아(Antonia)와 가까이 교제하며 아들을 로마 황실의 자제들과 함께 성장하게 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아그립바1세는 여러 비행으로 삶을 망칩니다. 어머니 사후에 재산을 탕진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어 유대로 귀환하는데 너무 어려워 자살을 결심합니다. 이런 상황에 누나인 헤로디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헤로디아의 남편 헤롯 안디바는 조카이자 처남인 아그립바1세를 디베랴 재정장관으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아그립바1세는 누나 헤로디아와 매형 안디바의 조롱과 멸시를 견디지 못해서 그 자리를 떠납니다. 헤롯 아그립바의 혈통을 부러워하였던 매형이자 삼촌이었던 헤롯 안디바는 헤롯 아그립바의 실수를 빌미삼아 아그립바를 쫓아냅니다. 헤롯 안디바를 떠나 수리아에 잠시 머물었던 아그립바1세는 로마로 돌아갑니다.
로마에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갚지 않은 빚이 있어 투옥 위기에 처하자 티베리우스 황제 동생의 아내인 안토니아가 돈을 갚아 주고 구해 줍니다. 안토니아는 어머니 베니게의 친구이고, 3대 황제 가이오 칼리굴라의 할머니요 4대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어머니입니다. 이때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와 교분을 쌓습니다. 같이 자랐던 그들을 다시 만나 우정을 쌓습니다.
이렇게 아그립바1세가 로마제국의 3대 황제와 4대 황제와 인맥을 쌓았고 두 황제의 등극에 공신이 됩니다. 아그립바1세는 티베리우스 사후에 가이우스 칼리쿨라를 위기에 구하려다 감옥에 6개월간 투옥됩니다. 마침내 칼리쿨라가 로마 황제에 등극하자, 황제로서 첫 결정이 자신을 위해 감옥까지 갔었던 아그립바를 유대 왕으로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3대 황제인 칼리쿨라가 사망했을 때 아그립바1세는 동갑의 친구 클라우디우스와 원로원을 중재합니다. 다리불구요 말더듬이었던 클라우디우스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원로원을 아그립바1세가 적극적으로 설득합니다. 아그립바1세의 결정적 도움으로 로마 4대 황제에 등극한 클라우디우스는 헤롯 대왕이 지배했던 팔레스틴 땅 전체를 헤롯 아그립바1세가 차지하게 함으로 아그립바1세를 명실상부한 유대 왕으로 자리 세워줍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는 헤롯 가문 왕들 중에 가장 스펙이 좋은 왕입니다. 그는 하스몬가의 피를 가진 왕입니다. 그의 할머니가 하스몬 왕족 출신인 마리암네였습니다. 그는 또 로마에서 교육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나아가 로마 황제들과 좋은 관계를 가진 인맥 부자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의 문화와 전통 존중하는 정책을 펴면서 '나사렛 칙령'을 발표합니다. 이 칙령의 피해자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로마에 거주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추방을 당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때 추방되어 고린도로 이주합니다.
아그립바1세는 이런 클라우디우스 황제 정책을 적극 지지합니다. 야고보 순교나 베드로 투옥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나사렛 칙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아그립바1세 행위입니다. 그는 성전 문화와 회당의 전통을 지지하는 제스처로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기독교인들은 핍박했습니다.
로마 황실의 적극적 후원과 유대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아 한껏 힘을 얻은 아그립바1세의 교만이 가이사랴 극장 연설과 신격화로 나타납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12:22~23)' 유대 왕으로 자격(교육, 혈통, 인맥)을 갖추었던 헤롯 아그립바1세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 시킨 그는 교만의 끝에서 죽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