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대왕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었습니다. 그는 지독한 고통 중에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던 아들을 사형시키고 자신의 후계에 대한 세 번째 유언장을 남깁니다. 헤롯대왕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으로 아내10명을 두었고 후계자 선정도 복잡했습니다. 요세푸스가 전하는 헤롯 대왕 10명의 아내들과 그 자녀들을 정리합니다.
헤롯 대왕의 첫 아내 도리스는 이두메인인데 안티파터(Antipater)를 낳았습니다. 안티파터는 헤롯 말년에 고모와 아버지 헤롯을 해치려고 로마 황실과 접촉한 것이 발각되어 헤롯대왕이 최후에 사형시켰습니다. 다음은 마리암네(Mariamne)1세인데 대제사장 시몬의 딸로서 빌립(Herod Philip)과 헤로디아스(Herodias)를 낳았습니다. 빌립은 이복형제 아리스토불로스의 딸 헤로디아스와 결혼했으나 이복형제 안티파스에게 아내를 빼앗겠습니다.
세 번째는 헤롯대왕이 가장 사랑했던 마리암네 2세입니다. 그녀는 하스몬 왕족 출신인데 헤롯대왕과 사이에서 알렉산더, 아리스토불로스, 키프로스 등을 낳았습니다. 미리암네2세(1세와 다른 미리암네)가 헤롯을 무시했고, 헤롯은 왕족인 하스몬 가문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마리암네, 그녀의 어머니, 그의 남동생, 그리고 그녀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로스를 죽입니다. 미리암네 둘째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스는 고모 살로메의 딸 베르니케(Bernice)와 결혼하여 헤롯 아그립바 1세등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왕입니다.
네 번째가 사마리아 출신 말다케(Malthace)입니다. 아켈라오(Herod Archelaus)와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를 낳았습니다. 이들이 헤롯 사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전처를 버리고 조카이자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하고 세례요한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째가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여인입니다. 헤롯과 빌립을 낳았습니다. 이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헤롯의 아내들이 다섯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파사엘을 낳은 팔라스, 록사나(Roxana)를 낳았던 페드라, 살로메를 낳았던 엘피스(Elpis), 그리고 사촌 여동생, 조카 등등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10명의 아내로 약 20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0명의 아내 중에 하스몬 왕가 출신 미리암 2세를 가장 사랑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헤롯대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과 그녀의 두 아들들(알렉산더, 아리스토불로스)를 처형합니다. 권력을 탐닉했던 독재자의 불행이 드러난 것입니다.
헤롯대왕이 죽자마자 아들들이 서로 왕이라는 주장을 하고 유대사회도 로마황실도 갈팡질팡합니다. 놀란 로마 황실은 헤롯 대왕의 영토를 그의 세 아들이 분할 통치케 합니다. 그 들은 헤롯 아르켈라오(Herod Archelaus),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그리고 헤롯 빌립(Herod Philip)입니다.
헤롯대왕은 최종적으로 아켈라오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를 사마리아, 유대와 에돔 지방의 분봉왕(Client King)으로 명합니다. 베들레헴이 아켈라오 통치 영역이었습니다.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던 요셉과 마리아는 아켈라오를 피하여 나사렛으로 갑니다(마2:22).
아켈라오 왕은 아버지처럼 잔인하고 불의했습니다. 그의 악행에 분노한 유대와 사마리아 지도자들이 아켈라오의 악행을 황제 아우구스도에 상소합니다. 이에 로마 황제는 아켈라오를 왕에서 면직시키고 추방시킨 후 이 지역을 로마 총독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파송된 총독이 빌라도입니다.
다음은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과 아우구스투스의 동맹 인질로 로마에서 성장합니다. 그가 통치한 갈릴리 지역이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활동무대였고 그의 재임 기간과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활동 시기가 같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디바가 복음서에 가장 자주 등장합니다.
헤롯 안디바는 나바테아 아레다(Aretas) 왕(고후11:32)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 여정에서 이복동생 빌립 부부와 유숙했습니다. 그때 빌립의 처(이복형 아리스토불로스 딸) 헤로디아에게 반합니다. 안디바는 헤로디아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여 결혼합니다. 이일로 그는 세례 요한의 지적을 받고, 딸을 버린 안디바에 분노한 아레다 왕의 침략을 받습니다.
셋째 헤롯 빌립 왕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클레오파트라 아들로 이두래와 두라고닛 지방 분봉왕입니다. 헤롯빌립(눅3:1)을 빌립 2세라고 부릅니다. 헤로디아 남편 헤롯 빌립1세와 다른 사람입니다. 빌립2세가 가이사랴 빌립보를 건축했습니다. 수도 파네이온을 고치고 확장하여 황제에게 헌정하며 빌립이 건축한 황제의 도시라는 뜻으로 '가이사랴 빌립보'라 칭했습니다.
헤롯빌립은 유대인이 없는 지역 분봉왕으로 갈등이나 사건이 없었습니다. 빌립의 백성중심의 통치는 유명합니다. 그는 외출할 때 재판석을 들고 나가 길에서 백성들 상소를 들으면 즉석 재판으로 백성들 마음을 샀습니다. 또 감세 정책도 유명합니다. 아켈라오는 매년 600달란트를 징수했고, 안디바는 매년 200달란트를 징수했는데, 빌립은 100달란트를 징수했답니다. 요세푸스는 빌립을 헤롯가문에서 가장 선한 왕이라 했습니다. 악한 왕 헤롯이 낳은 20명의 자손들의 악행이 1세기 초대교회와 선교 현장에 얽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