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춘기였을 때, '예쁜 여자들도 화장실에 가면 나처럼 일을 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자 형제가 하나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여자들의 실상(?)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머니가 계셨었지만 어머니를 여자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탓에 여자는, 적어도 예쁜 여자는 방구 소리도 나와는 다르고 냄새도 내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현실을보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선배 목사님과 노회와 관련해서 입씨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의 잘못된 정치에 관해 조목조목 따지는 저에게 그 목사님은 푸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 목사는 아직 뭘 몰라. 우리가 다 죄인이잖아? 그렇게 일이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야. 그런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해..." 말인즉슨, 당신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포기하고 살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산다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 타협하며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목사님 말처럼 우리가 다 죄인입니다. 모든 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우리의 현실을(?) 다 인정하고 그냥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일까요?
오래 전에 영적 현실주의자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주의자'란 말은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이익 따위를 우선시하거나 좇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영적'이란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현실일까요? 세상이 정말 우리의 현실일까요? 세상이 우리가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오늘 우리가 우선시 해야 할 가치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현실은 늘 세상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발버둥을 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관하여 엄연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고 하시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영적 현실이요, 오늘 우리가 실제로 우선시 해야할 가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절대로 믿음을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순천반란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총살했던 공산당원 안재선을 용서했습니다. 용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양자로 입양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아들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을 마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찌 이런 감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섰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깨어야 할 환상은 어떤 것일까요? '말씀대로 살 수 있다'라는 환상에서 깰 것이 아니라 '세상처럼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라는 환상에서 깨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줄로 믿습니다. 신기루 같은 세상을 좇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영적 현실주의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좇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