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영성"이라는 단어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영성"이라는 단어는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에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영적 성숙"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영성"을 "영적 발달"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적 성숙"으로 보면 "영성"은 완료형이 되지만 "영적 발달"으로 보게 되면 진행형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성"에 필요한 대표적인 모습을 꼽으라 한다면 "절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성"에 있어 절제함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세상의 유혹 앞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독교 영성 절제"라는 주제를 함께 나눠 보기 원합니다.
먼저 "절제"란 단어는 헬라어로 "엥크라테이아" (Greek: νῆψιςnepsis) 이며 영어로는 "Self-Control" 혹은 "Temperance"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방탕하거나 뭔가에 취하지 않다." 혹은 "절제하여 영혼을 맑게 유지함"라고 해석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여덟 가지 바쁜 생각들 즉 "간음", "탐욕", "비탄", "분노", "나태", "허용", "오만", "대식" 등이 우리 속에서 활개 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 몸과 마음의 평온과 정돈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절제를 위해 "영성 훈련"을 가지곤 하는데 이에 대하여 복음주의 신학자이면서 목사인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현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중심이 의지가 아닌 감점에 의하여 좌우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영성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별히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영성 훈련"을 크게 "절제 훈련"과 "참여 훈련"으로 구별하여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제 훈련"에는 "독거", "침묵", "금식", "검약", "순결", "금언", "희생"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참여 훈련"에는 "성경훈련", "예배", "찬양", "봉사", "기도", "친교", "복종" 등을 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영성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의 시대가 풍요의 시대이기 때문에 절제하기에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 그런데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라고 절제의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 목표는 "자신은 모든 일에 절제하며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썩을 승리의 관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언 25:28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절제는 영적 성숙에 중요한 요소이기에 절제가 없는 영적 성숙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절제라는 말의 또 다른 이름은 내려놓음입니다. 나의 잘못된 습관을 내려놓고, 나의 은밀하고 어두운 구석도 모두 포기하고, 내가 나를 통제하려는 마음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십자가의 은혜에 내어맡기면서 나아갈 때에 우리의 삶에는 자유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절제를 우리를 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신까지도 모두 버릴 때, 비로소 찾게 되는 것이 가장 귀중한 자유임을 기억하시고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