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전쟁, 끊임없는 외침과 위협, 국민 갈등에
21세기에는 환경오염까지, 배경에는 중국과 북한
한국,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가장 큰 피해 입는 중

◈기독교와 환경: 환경파괴와 종말의 불안에 민감한 기독교 문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는 환경 파괴로 멸망해가는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인류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는 바로 모래폭풍이다. 이 모래폭풍이 동식물 대부분을 멸종에 이르게 만들면서, 인류는 지구 바깥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하여 '나사로 프로젝트(Lazarus Project)'라 불리는 인류구원 탐사 계획이 실행된다. '나사로 프로젝트'라는 명칭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으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나사로와 같이,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네 명의 훈련받은 우주인들이 지구를 떠나 우리 은하가 아닌 다른 은하로 머나먼 우주 여행을 나선다.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영화 <아이오(Io)> 역시 비슷한 설정이다. 지구는 대기오염으로 산소가 대부분 사라지고, 오직 유독가스만 남게 된 상황이다. 인류 대부분이 이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 그리고 식량 부족으로 죽음에 이르고, 극소수 살아남은 이들만 '아이오'라 불리는 목성 근처 우주정거장으로 피신한 상태이다.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몇 명 되지 않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아이오로 피신하는 우주선을 타려고 우주선 발사 지점으로 모여든다.

일전의 논평들에서 몇 차례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일본 대중문화계에는 인류 멸망에 관한 작품들이 흔하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인류 멸망은 이 분야 단골 설정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에 <인터스텔라>나 <아이오>가 있다면, 일본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있다.

두 나라의 종말 서사 작품에는 커다란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일단 공통점 측면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인류 멸망의 직접 원인으로 과학기술 오·남용이 지목된다는 것이다. 핵전쟁이나 무분별한 자원개발 등을 다루는 작품의 서사 대부분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차이점으로는 종말에 대한 불안의 문화적·심리적 배경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빈번한 자연재해로 인한 생존의 위협과 태평양 전쟁 패전 당시의 역사적 트라우마, 특히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경험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인류 종말 서사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었다.

반면 미국인들의 인류 종말 서사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문화배경을 갖는다. 미국 대중문화계 종말 서사 상당수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 예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상상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인터스텔라
▲모래로 뒤덮여 황폐해진 지구에서 멸망해가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터스텔라>.

미국의 종말 서사 영화나 TV 시리즈에 엿보이는 것처럼, 기독교 창조론과 종말론에 대한 믿음을 세계관 형성 배경으로 삼고 있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대부분은 종말에 대한 직·간접적 두려움을 안은 채 살고 있다.

물질적 세계, 우주가 결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한한 피조물일 뿐이기에, 언제든 파괴되고 소멸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무신론과 세속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과 서유럽 선진국 각국이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나 파리 기후 협약(Paris Climate Agreement) 같은 공동대응 시도를 통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 역시 일정부분 기독교적 세계관, 특히 종말론적 세계 이해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와 환경: 종말을 불신하고 환경에 무자비한 공산주의 세계관

오늘날 범지구적 규모의 환경오염 주범으로 자주 회자되는 국가가 있다. 다름아닌 중국이다.

특히 이산화탄소 대규모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태평양 쓰레기 벨트, 그리고 최근 들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중국과 주변국의 미세먼지 문제는 거의 의심의 여지 없이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산업화에 의한 환경 오염 및 파괴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라면 어디든 겪는 문제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시작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지구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해 왔다.

그리고 이 경제발전 역사를 뒤따라가는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환경파괴 수준은 가히 압도적이다.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인구 수, 거대한 영토, 그리고 이 두 요소를 적정 한도 이상으로 활용하는 막대한 규모의 산업활동으로 인해 중국 본토는 물론 주변국 모두가 중국이 초래하는 환경오염의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이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빈약하다. 중국이 여러 방면에서 신재생에너지나 환경친화 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세먼지 광화문 북한산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려진 서울 광화문 모습. ⓒ이대웅 기자

하지만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정책 기조를 살펴볼 때, 이는 환경보호에 대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산업들이 향후 경제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환경오염 행위에 뒤늦게나마 제동을 걸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유독 중국이 이 흐름에 참여하는 데 미온적일 뿐더러, 혹 참여의지를 보이더라도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이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중국인들, 특히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공산주의 세계관을 지목할 수 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환경파괴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사고구조를 갖는다. 우선 반종교적 유물론 사상을 고수하기 때문에, 기독교 창조론이나 종말론을 전적으로 불신한다. 이렇게 종말론을 폐기하려는 태도 때문에 세계와 인류의 종말 가능성 역시 부정한다.

마르크스 공산주의를 중국식으로 수정한 마오쩌둥식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진 중국 공산당 수뇌부 역시, 인류 종말에 대한 불안이나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구의 자연환경을 최대한도로 쥐어짜내 이익을 갈취하는 행태로 이어진다. 중국이 주도하는 자원개발 사업 및 대규모 토목사업이 유독 심각하게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사상적·문화적 배경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파괴적 행태는 중국의 고질적인 중화사상과 맞물려 주변국과 전 세계 사람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추진한 일대일로 관련 개발사업들, 그리고 한때 친중 성향을 보인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벌인 수많은 개발사업이 초래한 환경적 폐해는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해당국들이 그 폐해에 놀라 급하게 '차이나 머니'의 유입을 막으려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호주 사용금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케스윅 아일랜드. 중국의 투자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현지인들이 해안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섬의 숲이 모래밭으로 변하는 등 환경파괴가 심각하다. 중국식 개발사업이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을 대표하는 사례로 최근 자주 지목되고 있다. ⓒnews.com.au

이러한 중국의 무개념 행각들은 기독교 종말론을 거부하고 폐기하려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반종교적 성향과 깊은 사상적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지구 환경의 오염과 파괴에 둔감한 다른 두 가지 이유, 마르크스적 역사 변증법과 진화론적 낙관주의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지난 주 내내 우리 나라를 뒤덮은 살인적 중국발 미세먼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을 선사한 중국의 20톤짜리 우주쓰레기 추락 사례는 사상적·문화적으로 볼 때 모두 중국의 공산주의와 중화사상에 기인하는 바가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만큼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가 또 존재할까 싶다.

20세기 내내 이어진 분단, 전쟁, 끊임없는 외침 위협, 국민 간 갈등과 분열에 이어, 21세기에는 중국의 살인적 환경오염까지 모두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사상에 상당 부분 기인한 국가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