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모국에 도착한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직 시차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제 영혼은 고요한 은총 아래 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이티 선교팀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위험하고 열악한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팀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또한 부활절 어린이 잔치를 위해 기도하며, 아이들의 웃음 속에 부활의 생명이 피어나기를 소망했습니다. 모국에서 처음 전한 말씀은 “하늘에서 임하신 비둘기 같은 성령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열린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부드럽고 고요하게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그 순간, 하늘의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성령님은 왜 비둘기처럼 임하셨을까요? 그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비둘기는 새로운 시작의 신호입니다. 홍수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때, 노아는 방주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얼마 후, 비둘기는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옵니다(창 8:11). 비둘기는 새 잎사귀를 통해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죽음의 물이 물러가고, 생명의 숨결이 다시 땅 위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둘기는 단순한 새가 아닙니다. 하늘이 땅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감람나무의 기름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머리에 부어졌던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 삶 위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마른 땅에 돋아나는 새 잎처럼, 성령님은 메마른 삶 속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둘째, 비둘기는 진심과 전심의 사랑입니다. 아가서에서 신부의 눈은 비둘기의 눈으로 묘사됩니다(아 1:15, 4:1, 5:12). 비둘기는 주변의 여러 사물을 산만하게 보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한 대상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 눈은 흩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둘기는 한 번 사랑하면 평생 그 사랑을 지킨다고 합니다. 비둘기의 마음은 진심(眞心)입니다. 가식이 없는 마음,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전심(全心)입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영혼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목사님은 《온전론》에서 ”사람에게는 진심(眞心), 하나님께는 전심(全心)인 목회“를 강조합니다.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사는 삶, 그것이 성령님이 머무시는 자리입니다.

셋째, 비둘기는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비둘기는 온유합니다. 비둘기는 싸우기를 싫어하며, 다투지 않고, 화평을 선택합니다. 그 조용한 날갯짓 속에 하늘의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금슬지락(琴瑟之樂)의 모범입니다. 금슬지락(琴瑟之樂)은 거문고와 비파가 함께 어울려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두 악기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조화를 이루듯, 사랑은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서로 받아주고, 보완하며, 서로를 세워줄 때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비둘기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지속적인 헌신에 있습니다. 예수님 위에 임하신 성령님은 잠시 머물다가 떠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요 14:16).

넷째, 비둘기는 탄식하는 기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오직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때로 우리는 기도할 힘조차 없습니다. 무너진 마음과 흐르는 눈물만 있을 뿐입니다. 그때 성령님은 비둘기처럼 울며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해 주십니다. 히스기야가 병상에서 울부짖을 때, 그의 기도는 비둘기의 울음처럼 하늘에 닿았습니다(사 38:14). 하나님은 그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의 눈물은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였습니다.

다섯째, 비둘기는 누구에게나 임하는 은혜입니다.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도 드릴 수 있는 제물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드린 제물입니다(눅 2:24). 비둘기는 누구나 드릴 수 있는 제물입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 부서진 사람, 연약한 사람, 우울한 사람, 침체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임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미 성령님이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롬 8:15-16).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있다면 이미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고전 12:3).

날마다 성령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혹시 지금, 홍수 이후의 땅처럼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고, 다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계십니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까마귀가 아니라 비둘기를 보내십니다. 그 비둘기의 입에 “새 잎사귀”가 물려 있습니다. 작지만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새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새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크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아주 작게 다시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처럼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당신의 삶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모국에서 강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