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에 성폭행당한 후 男보다 강해야 한단 라이벌 의식
나 자신 지키지 못했던 피해자, 나 먼저 용서해야 했다
동성애는 후천적인 것, 시작되는 경로는 각자 다양해

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양은 “당시 남자의 외모를 가졌지만, 제 정신과 속의 장기들은 병들어 갔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양은 “당시 남자의 외모를 가졌지만, 제 정신과 속의 장기들은 병들어 갔다”고 전했다. ⓒ송경호 기자

성패(成敗)의 패러다임을 밀어내고, 현재진행형의 "분투"에 주목하며 삶의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들을 나누는 '크로스' 두 번째 주인공 이효진 씨(빛의자녀교회)와의 인터뷰 두 번째 편입니다. 정애주 대표(홍성사)와 함께 질문했습니다.

지난 편에서 여성과 남성을 모두 겪어본 독특한 경험에 대해 나눴다면, 이번에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가 됐던 이유와 과정, 그리고 용서 등에 대해 풀어놓았습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선택은 우리 삶에서 매일 해야 하는 실천사항입니다. 반면 이미 주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은 자유라고 학습받고 설득당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에 앞선 첫째 조건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운명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내게 지금 주어진 존재와 상황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과 내가 선택하는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다른 건 뒤집을 수 있지만 성은 뒤집을 수 없는 것인데, 굉장한 용기와 고뇌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운명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는데 그걸 거스르는 선택과 되돌리는 선택, 그 결정적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욕구에 따른 선택을 했을 때, 항상 95%밖에 안 됐습니다. 완전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결정했을 때는 항상 그랬습니다. 나머지 5%를 채우려다, 트랜스젠더까지 간 것 같습니다. 29세까지는 그렇게 살았어요.

사람 마음에 '구멍'이 하나 있다고 많이들 말씀하시잖아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 이건 힘을 빼야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힘을 줘서 앞으로 가다 보니, 목표점이 계속 앞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니, 목표점이 다가왔습니다.

힘을 빼니까, 자연스럽게 되어졌습니다. 되어진다는 건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되어지는 것을 경험하니, 그 이후의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몸도 회복되고, 때에 맞춰서 오늘 이렇게 대표님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웃음)."

-우문현답입니다.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95%보다 5%가 더 크게 느껴졌다는 것이지요.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5%가 훨씬 더 커 보였지만, 그건 내 구멍일 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량이라는 부분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전체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살아보니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기 몸을 던져 경험해본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렇게 효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쁩니다.

과거 '난 남성과 대결해야 해. 인정할 수 없어. 우월한 남자가 될 거야' 하고 생각하셨는데, 직접적 동기가 됐던 사람이 있나요.

이효진 탈트랜스젠더
▲과거 '남성'으로 살던 시절 이효진 양의 모습. ⓒ이효진 양 제공

"한 동네 청년이었습니다. 플룻을 전공한 그 청년이 '플롯을 잘 불고 싶어?' 하면서 성적 접촉을 요구했습니다. 7세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른의 힘이었죠. '이건 이상한 거야' 생각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상처가 안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려서 함부로 한 거야'라고 여겼고, 나이가 들면서 오만 생각을 다 했습니다. 분노에 찼고, 그 분을 생각하면 욕이 나왔고, 남성을 혐오했습니다. '내가 남자였어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고, 여성이라서 당했다는 식으로 왜곡됐습니다. 그 분 때문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무뚝뚝한 분이라 더 고립됐습니다. 오빠가 저를 예뻐했지만, 그것마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를 이기려 하고 적대시했습니다."

-지금 효진 씨가 '그 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상처가 있을 때 가장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이죠. 약한 나 때문이라고도 하셨는데, 용서했다면 누구를 하셨나요.

"저를 용서했습니다. 저부터 용서해야 했습니다. 저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가서 보니,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 속사람은 울고 있고 상처 투성이인데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완벽주의도 있었습니다. 실수하면 잠을 못 잤어요. 내가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는데, 지금은 그 말이 와 닿습니다.

'그 분'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양하면서 청년들에게 '네가 건강하면 주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아. 그도 연약한 사람이야'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그 분도 용서하게 됐습니다. 그 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삶의 문제가 시작된 시점이었지만, 결국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해소하는 건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어머니도 어린 시절 저를 방치하신 편입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일을 하면서 잘 지내다, 강원도 강릉이라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 오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셨고, 연애 결혼도 아니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 부분들이 자녀들에게 투사됐겠지요. 지금은 엄마가 안쓰럽습니다.

예전에는 상처가 있다 보니, 남이 해준 만큼만 해줬습니다. 잘 해주면 잘 해주지만, 반응이 없으면 무 자르듯 잘랐습니다. 지금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합니다. 전에는 상처준 것만 생각났는데, 지금은 상처는 요만큼뿐이고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다.

엄마 아빠도 육아가 처음인데, 어떻게 완벽하게 할 수 있겠어요. 요즘은 애교도 부리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아직 믿지 않으시기 때문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를 배우고 나서부터, 조금 더 성숙해졌습니다."

-긍휼(矜恤)이라는 단어는 부모가 자식에게만 쓸 수 있습니다. 가슴팍이 찢어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안고서도 끌어안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용서한 사람이 있습니까.

"패션과 예술계에서 일했습니다. 예민하고 자신을 투사해야 하는 곳입니다. 비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습니다. 저도 상처를 받았지만,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소수자로 살았을 때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성애나 젠더, 제3의 성 등의 문제들에 있어, 출발이 항상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생겨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걸 왜곡해서 그렇게 프레임을 짜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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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트랜스젠더 이효진 양은 "완벽하게 성전환을 하려면 성염색체를 바꿔야만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성폭력이나 동성애로 끌어들이는 지점, 연인 관계의 데이트 폭력 등, 케이스는 다르지만, 출발 자체는 항상 강자가 약자를 '그루밍'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화지에 누군가 그림을 이미 그려놓아서, 그렇게밖에 살 수 없던 사람들입니다. 케이스가 너무 많고 다양합니다. 사회에서 그런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흑인 인권, 여성 인권에 성소수자 인권을 덧붙입니다.

제 경우 그 분은 소아성애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케이스도 있지만, 아닌 케이스도 많습니다. 남성들이 (이성) 포르노를 보다 충족이 안 돼서, 동성 포르노로 넘어갔다가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폭력물을 보지 말라는 이유도, 그렇게 행동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고, 성인이 된 후 호기심에 동성을 만나면서 그렇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군대를 가서, 본인이 힘들어서 (동성을) 건드린 경우도 있습니다. 둘 다 처음인데, 병영 안에서 성욕을 푸는 상대가 되는 경우입니다.

죄라는 것이 은밀하고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럴수록 스릴이 있고요. 그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동성애자들 중에도 성폭행 경험자는 10명 중 2명 정도였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이라면, 나머지 분들이 '나는 아닌데? 그럼 (동성애는) 선천적이네'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동성애 관계의 근본적 원인은 가족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범죄심리학, 정신의학, 심리상담 등을 공부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태어나서 10세까지 어머니와 맺는 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관계가 안정되지 못하고 결핍되면, 그 욕구가 다른 곳으로 튀어나갑니다. 그 중 하나가 동성애입니다. 이성애자들 중에서도 섹스 중독과 마약 중독이 있듯이, 성전환도 그런 경우입니다.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갈구하게 됩니다."

-여성성에서 모성애를 끄집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성애의 반대는 부성애일 것 같은데, 캐릭터가 잘 없어요. 희생 없이는 안 되는 일인데, 걱정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게도 이런 문제로 상담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주로 자녀들보다 부모님께 말씀드립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부모님들이 자녀를 하나님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쭉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했다고 하는데, 갑자기는 없습니다. 조짐이 있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갑자기' 같습니다. 자녀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상담 오시는 분들은 사업 위기 등으로 쪼개진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제 조금 살만 하니 자녀가 '커밍아웃'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 때, 곁에 없었기 때문에 생깁니다. 다른 곳에서 결핍을 채우다 보니, 거기까지 갑니다. '이슈화되기 때문에 큰 죄라고 생각하는데, 거짓말하고 미워하는 거랑 똑같다'고 합리화합니다.

자녀들이 (동성을) '애인'이라고 데려오는데,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동성애는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아요?' 하고 물으십니다. 자꾸 허락을 받으려 하십니다. 합법적으로 화를 내고 싶으신가 봅니다. 자녀에게 '본인이 맞다'고 빨리 이야기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말로 해서 바뀌었으면 모든 아이들이 다 바뀌었겠죠. 기도부터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이효진 탈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살던 시절,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이효진 양. ⓒ이효진 양 제공

저도 처음에는 헷갈렸습니다. 말로 한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이라는 비유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해 봐야 안 바뀝니다. 자기 방어만 할 뿐입니다.' 그 어머니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돼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와도 비례합니다."

-상담자는 이정표일 뿐, 이 아이를 위해 희생할 사람은 결국 부모입니다. 아이가 변하려면 부모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제게 다 맡기려고 하십니다. 억지로 끌고 와서 '바꿔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어머니, 자녀분이 저를 만나는 건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자녀는 '엄마, 만났잖아? 이제 됐지?' 이렇게 될 뿐입니다.

하물며 그들이 스스로 찾아와도 쉽지 않습니다. 안간힘을 써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자녀도 성인이니, 저도 못 바꿉니다.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기도하세요'라고 합니다."

-솔직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것 같습니다. 공부를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만큼, 정직하게 사회에 보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