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이지 실패가 아닙니다. 그래서 실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공의 이야기 보다는 경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공의 이면에는 거의 대부분이 실패 이전에 경계의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희 가운데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씨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땅이 아파야 합니다. 아파야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뿌려진 씨앗이 결실을 맺는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내는 땅은 너무 많은 아픔을 감수하는 땅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경계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책망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계에 실패한 사람이 히스기야 입니다. 히스기야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죽을병에서 이기고 난 다음, 바벨론 사신에게 모든 것을 자랑하다가 빼앗기고 맙니다, 경계의 말씀을 무시하다가, 실패와 넘어짐이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듯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미련함입니다. 그럼 왜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내일은 내 소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을에 소출이 많아 창고를 짓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한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관자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입니다, 오늘은 내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선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남의 칭찬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칭찬에 굶주린 영혼에게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의 칭찬은 오히려 넘어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의 칭찬과 남의 시선에 좌지우지 되는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만 바라 봐야 합니다. 그것이 중심 있는 인생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결핍이 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핍을 통해서 양보를 배우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없으면 감사가 없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핍에서 공감 능력을 배우고, 결핍에서 감사를 배우고. 결핍으로 인해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짐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핍을 아는 자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어 지게 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됩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이 흘러넘침으로. 공동체가 풍성해집니다. 서로의 자극을 통해서 성장하고, 상대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성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 적당한 결핍이 은혜와 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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