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는 오늘의 본문 말씀인 이사야 27:2-6에서 포도원과 포도원지기의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다. 더불어 하나님의 대적들이 멸망당하는 그날 각지에 흩어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예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1차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들의 어두운 역사에 간섭해서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회복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삶의 어려움으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회복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포도원자기가 되셔서 세우신 포도원을 눈동자같이 지키고 돌보아 주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이러한 회복의 은혜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범사에 도움이 되시는 은혜
본문 3절에는 주님이 우리 인생을 도우시는 과정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인생을 돌보시는 첫 번째 행위는 때를 따라 물을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생이 물을 공급받음으로서 땅을 적시고 기름지게 되어 생명이 넘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은 밤낮으로 간수하여 돌보아 주시는데 그분의 인생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눈동자같이 지키고 보호해 주심으로 그 어떤 것도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신다. 주님은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셔서 때를 따라 도우시고 필요한 은혜를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간수하는데 있어서 울타리 치듯이 보호막이 되어주시며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사람마다 그들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신다. 이에 선지자는 이사야 49:8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주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순간에도 도와주심으로 범사에 도우시는데 이러한 사실이 회복의 은혜인 것이다. 이에 바울은 고전 15:10에서 이렇게 간증할 수 있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마다 회복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지금도 인생들을 돌보시되 주야로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며 마귀에게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지키고 돌보아 주신다.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 되시기 때문에 이민생활로 힘들고 어려울 때 그분이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마음껏 체험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분은 온전한 도움이 되시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해주신다. 우리는 주님의 돕는 은혜를 통해서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좁은 문을 향해서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쟁에 이김을 주시는 은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본문 4절에서 이와 같이 그들을 위로하신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하나님이 세우신 포도원에도 포도나무의 성장을 가로막고 어려움을 주는 찔레와 가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분의 능력은 이러한 것들을 밟아버리되 불살라서 존재도 알아볼 수 없도록 하신다. 대적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이고 강력한 주님의 힘과 능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은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울타리를 쳐서 막아내고 내부의 적인 찔레와 가시는 밟아버리고 불에 태워 버린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의 현장을 둘러보면 온통 전쟁터인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지금도 대적 마귀는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고 있다. 순간적으로 방심하는 사이에 사단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에 근신하고 깨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람의 힘이나 재주가 아니라 오직 예수를 의지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싸움은 전적으로 그분의 손에 달려 있기에 그 손을 의지함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절한 전쟁의 현장에서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분이기에 그분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전쟁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로리 베스 존스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책에서 "성공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오늘도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목말라 있는데 성공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에 그분의 뜻을 이룸으로서 범사에 형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신명기 29:9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대적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그분이 도와주신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대적을 철저히 물리쳐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때마다 결실을 주시는 은혜
이사야는 본문 6절에서 주님의 회복의 역사를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여기에서 후일이란 완전한 회복을 이루는 날로서 주님이 약속하신 언약이 채워지는 때를 말한다. 이는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이 완전히 성취되는 때를 의미하는데 그 결과 이날에는 야곱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의 터가 자리를 잡고 그 가운데 꽃을 피움으로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우리는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야곱의 뿌리가 박혀진다 함은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사람이나 공동체는 최종적인 승리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분은 우리와 친하기를 원하는데 예수와 연합하는 모두는 뿌리가 박혀서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는 보장의 말씀이다. 둘째, 생명이 움직인다는 말로서 당시 이스라엘은 황폐하고 소망이 없는 상태였지만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는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생명을 받아 소망의 꽃을 피워가게 된다는 말이다. 끝으로 예수와 연합하는 사람들에게 결실이 가득하게 된다는 말이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아름다운 결실을 원하는데 예수 안에 있는 성도나 공동체에 열매가 나타나고 결실을 통해서 지면에 채워지는 보장을 해주셨던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에 은혜를 주셔서 손으로 하는 것마다 결실을 이루신다.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시는데 땀 흘려 일하는 것마다 결실을 이루신다는 말이다. 그분은 일찍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복을 허락하셨고 이를 통해서 소득을 얻는 복을 아울러 주셨다. 이에 삶의 현장에서 신앙생활을 감당하고 땀 흘려 일함으로서 결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이 부어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는데 그분이 주시는 결실을 통해서 부족함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뿌린 씨는 내일 거두고 청년시절에 뿌린 씨는 나이가 들어서 거두며 부모가 뿌린 씨는 자손들이 거두고 이 세대가 뿌린 씨는 다음 세대가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지만 영혼을 위해서 심고 투자한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것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