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프 파운틴 작가의 기고글인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지혜'(Wisdom from an unexpected source) 7월 14일 게재했다.
제프 파운틴 작가는 슈만 유럽 연구 센터(Schuman Centre for European Studies)의 창립자이며 1990년부터 YWAM 유럽의 이사로 재직하며,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변화된 정치 환경에서 활동해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주, 북극권에 사는 한 노르웨이 동료가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두 명의 무신론자 사회주의 국회의원이 쓴 성경 관련 책이 노르웨이에서 예상 밖의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흥미로웠다. 성경은 많은 세속적 유럽인들이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경이로우며, 더 급진적이고 설득력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성경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노르웨이 적색당(Rødt, Red Party) 소속의 저명한 두 정치인이 자신들이 소중히 여겨온 가치, 곧 인간의 존엄성, 평등, 연대,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성경적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발견했다면, 우리 역시 이 놀라운 책을 다시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늘날 많은 유럽인들은 기독교를 과거의 유물로 취급한다. 그것이 문화유산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공적 삶을 위한 살아 있는 지혜의 원천은 아니라고 여긴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이 현대 민주사회에 기여하기에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억압적이며, 혹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를 위한 성경 가이드(Sosialistenes guide til Bibelen)』의 저자인 미미르 크리스티안손(Mímir Kristjánsson)과 소피 마르하우그(Sofie Marhaug)는 독자들에게 예수가 사회주의자였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권하는 것은 단순하다. 성경이 노르웨이의 문화와 공적 도덕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필수적인 책이므로, 동료 시민들이 그것을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가 특히 놀란 것은 성경이 가난한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이었다. 선지자들의 글에서부터 예수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부를 결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경제력은 그것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쓰이는지, 아니면 착취하는 데 쓰이는지에 따라 반복적으로 판단된다. 저자들은 성경이 얼마나 자주 불의를 규탄하고, 과부와 고아를 변호하며, 나그네를 환대하고, 부의 타락한 힘을 경고하는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이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자주 다뤄져 왔는가. 반면 경제적 정의, 기업 윤리, 부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질문은 그만큼 충분히 다뤄져 왔는가. 크리스티안손과 마르하우그가 발견했듯, 성경은 이 두 영역 모두에 대해 놀라울 만큼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은혜라는 차원
그들이 또 하나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정치 선언문에는 '은혜'가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정치는 주로 권리, 이익, 협상, 권력을 통해 작동한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차원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비와 용서, 화해의 차원이다. 정의는 지극히 중요하지만, 정의만으로 모든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깨어진 관계는 회복될 수 있고, 원수도 이웃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단순히 경쟁하는 사회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바라본다.
건강한 사회는 시장이 만들어낼 수 없고, 정부가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덕목들 위에 세워진다. 정직, 겸손, 용서, 책임감, 신뢰가 그것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정치적 덕목이기 이전에 관계적 덕목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의회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가정과 이웃, 교회 공동체와 자발적 모임 속에서 자라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비전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어느 한쪽보다 훨씬 크다. 성경은 사람을 돌보지 않고 이윤만 추구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분명히 이의를 제기한다. 동시에 구조적 변화만으로 사회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경고를 보낸다.
성경은 불의가 단지 제도 안에만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도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탐욕과 시기, 교만과 권력욕은 특정 경제 계급이나 정치 정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사회주의자를 위한 성경 가이드』가 남긴 가장 큰 공헌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두 저자가 보여준 '호기심'일 것이다. 두 명의 회의론자는 성경 안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 문서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긍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유럽인들의 가장 깊은 전제를 오늘날까지도 형성하고 있는 살아 있는 텍스트를 마주했다.
우리의 맹점
유럽 전역에서는 개인적 신앙이 거의 없는 이들 사이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상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성경이 인권과 민주주의 제도에 끼친 결정적 영향을 점점 더 인정하고 있다.
철학자들 역시 보편적 인간 존엄성과 같은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세속적 평론가들조차 자유민주주의가 처음 자신에게 자양분을 공급했던 도덕적 토양에서 단절된 채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톰 홀랜드, 래리 시덴탑, 위르겐 하버마스, 존 그레이, 유발 노아 하라리, 아얀 히르시 알리, 더글러스 머리,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비롯한 종교계와 세속계의 여러 학자들은 인권과 자유민주주의가 종교를 대체한 계몽주의의 단순한 발명품이라는 과거의 서사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오히려 그들은 계몽주의가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문화의 틀 안에서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도덕적 개념들을 변형하고, 재해석하며, 세속화했다고 본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사회주의자들조차 성경을 다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면, 왜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공적 삶을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려놓았는가. 성경을 가장 진지하게 여겨야 할 복음주의자들조차 성경과 공론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맹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노르웨이의 무신론자 사회주의자 두 명이 성경의 페이지 속에서 뜻밖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우리 역시 이 책을 다시 펼쳐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의 정치적 진영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우리 자신의 진영을 포함한 모든 진영에 정당한 도전을 제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경은 사회주의나 보수주의, 자유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에 환영받아야 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스스로 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받아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는가. 무엇이 권력을 통제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용서해야 하는가. 정의가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 역시 뜻밖의 울림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마디. 예수님,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가 당신을 항상 믿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우리를 믿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