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사도 바울이 스스로 자랑했던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겸손한 그는 바리새인, 가말리엘 문하생, 로마 시민권자, 그리고 다소(Tarsus)출신이라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수차례 다소에서 태어났음을 자랑합니다(행21:39, 22:3). 바울의 출생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예수께서 탄생하신 몇 년 후에 다소에서 태어나 성장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울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그의 고향 다소를 알아야 합니다.    다소는 선사시대에 건설된 고도(故都)입니다. 6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다소는 주전 3000년경에 요새화됩니다. 이 도시는 육로만 아니라 키드누스강의 하류에 있는 항구를 이용한 해로도 있어서 주전 2300년경 트로이의 초기시대에, 해안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주전 2000년경 힛타이트 제국 시대에 다소는 그 중요성이 좀 더 평가받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길리기아 키주와트나(Kizzuwatna)국으로 등장했을 때, 다소는 '타르사(Tarsa)'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도시 역할을 합니다. 그 후 다소는 지중해의 해양 교통과 터키의 내륙 교통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달하며 무역과 상업의 도시로 자리 잡습니다.

이렇게 성장해온 다소는 사도 바울이 태어날 즈음엔 로마 제국 길리기아 지방의 행정 수도였고, 여전히 교통과 상업의 도시였습니다. 다소는 길리기아 평원과 키드누스(Cydnus)강 덕분에 낙농업이 발달했고, 생산된 염소 털과 염소 가죽이 특산물이었으며 텐트 산업이 성행했습니다. 전통에 의하면 사도 바울 아버지 직업이 텐트를 만드는 일이었답니다. 바울이 천막을 만들며 선교한 것은 고향 다소의 영향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소는 중요한 교육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장할 때 다소에는 저명한 스토아학파 철학자 아데노도로스가 활동했는데 그는 가이사 아우구스투스 황제(Augustus Caesar, 27-14 재위)의 스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Tiberius, 14-37 재위)였는데 그가 친히 임명한 자신의 스승 네스토르(Nestor)가 다소에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유명한 웅변가요 철학자인 키케로가 다소의 총독을 지냈습니다. 다소는 로마 정부와 좋은 관계 속에 학문을 꽃피웠던 스토아 도시였습니다. 당시 유명한 다소 출신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의 안티파터(Antipater), 라키데머스(Rachidemus), 네스터(Nestor), 아데노도러스(Adenodorus), 말커스 카토(Marcus Cato) 등이 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들이 다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들의 스승이 스토아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고, 아데노도로스는 가이사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스승이었고, 네스토르(Nestor)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스승이었습니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시대에 스토아 철학의 도시 다소를 아무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3대 교육도시가 있었습니다. 아테네는 많은 교사(철학자들)로 유명했고, 알렉산드리아는 도서관과 대학 건물이 좋아 유명했고, 다소는 교육열과 교육환경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로마의 역사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당시 다소의 문화적 수준은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대등했다고 합니다. 다소는 일반 시민들의 교양과 지식수준이 상당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향 다소의  어느 골목
(Photo : 대구성서아카데미) 사도바울의 고향 다소의 어느 골목

특히, 다소는 스토아철학이 보편화 되어 스토아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다소 시민들의 일상 대화에서 인용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소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철학적 소양이 높았다고 전해집니다. 다소가 이런 스토아철학에 대한 소양이 높은 도시였다는 것은 바울이 스토아철학에 친숙했을 것을 암시합니다. 훗날 바울이 선교사가 되어 2차 선교 여행 중에 아테네에서 철학자들을 만날 때 그의 스토아철학의 소양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여러 철학자의 경구와 시를 인용하면서 아테네 철학자들을 설득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다소를 얘기하면서 클레오파트라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원전 41년에 마크 안토니오는 빌립보 싸움에서 승리하자 반대편을 도왔던 클레오파트라에게 따지려고 다소로 불렀습니다.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줄리어스 시이저를 유혹하여 자신의 보호자로 삼았으나 그가 암살당하자, 안토니오 장군을 유혹해 자신의 보호자로 삼으려고 다소로 찾아갑니다. 역사가 플루타르크(Plutarch)는 안토니오를 유혹하기 위해 다소에 도착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을 황홀하게 묘사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매혹된 안토니오는 그녀를 꾸짖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나톨리아의 광대한 해안지역을 그녀에게 주며 구애합니다. 두 사람은 다소에 몇 달간의 밀애를 나누었습니다.

현재 다소에는 중요한 유적 관광지로 바울 태어나 자라며 마신 바울 생가 우물이 있습니다. 아울러 클레오파트라의 다소 방문을 기념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 기념교회가 도시 한 가운데 있습니다. 다소를 살피면 살필수록 바울을 다소에서 태어나 자라게 하신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계획하심에 무릎을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