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이익 눈 멀어... 예술의 처참한 결말
정작 중국인들도 '서사와 고증 형편없다' 외면
PC운동의 탈 쓴 얄팍한 상업주의 예술의 한계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 <뮬란>.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 <뮬란>.

◈예술행위의 창의성: 디즈니 콘텐츠의 퇴조와 창의성 결여

지난주 목요일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 <뮬란>이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주연배우 유역비의 홍콩 민주화 운동 비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이 작품은, 개봉 후 평단과 관객 양측으로부터 모두 처참한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서사의 개연성과 액션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평작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뮬란>은 미중 무역분쟁에 의한 중국 내 반미감정의 여파로 중국 극장가에서조차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에다 작품에 대한 평가마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는 성적을 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뮬란>뿐 아니라 최근 디즈니에서 내놓는 콘텐츠 상당수가 창의성을 잃어버린 채, 이전에 여타 프랜차이즈들이 창안한 캐릭터와 서사, 그리고 세계관에 의존해 우려먹기로 내놓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오리지널 월트 디즈니 프랜차이즈에서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캐리비언의 해적> 시리즈와 <겨울왕국> 시리즈뿐이다.

두 시리즈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둬서 묻힌 감이 있지만, 그 외 디즈니 프랜차이즈에서 제작된 작품 대부분이 흥행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 마감 이후 디즈니가 고유의 창조적 콘텐츠 기획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어쩌면 막강한 자본력으로 M&A에 몰두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지 모른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1990년대부터 ABC, ESPN, 픽사,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을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의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다.

이 가운데 픽사와 마블 스튜디오, 그리고 루카스필름 등 인수한 자회사들이 제작한 영화들이 충분한 흥행 성적을 내주면서, 디즈니 자체의 콘텐츠 제작 역량은 정체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그룹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의 콘텐츠 제작 및 연출력이 약화되면서,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인수한 자회사 프랜차이즈들의 콘텐츠 창의력도 점차 약화되는 모습이 목격된다.

마블은 MCU 페이즈 3의 최후반부를 장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이렇다 할 흥행 대작이 없고, 픽사 역시 최근에는 <토이스토리> 초반 시리즈와 <인크레더블> 초반 시리즈처럼 막강한 흡입력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무리한 설정 파괴와 정치적 올바름 성향 때문에 원래의 팬덤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상황이다.

이번 개봉된 영화 <뮬란>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즈니 콘텐츠의 퇴조 현상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뮬란>은 애초 타겟이 되는 시장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남북조 시절 훈족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운 한족 소녀의 전설 <목란사>를 바탕으로 삼는 작품인 만큼, 중국 시장 공략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뮬란 유역비
▲영화 <뮬란>은 서사, 역사 고증, 연기 등 모든 측면에서 혹평을 받고 있다.

개연성과 치밀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중화사상에 맞춘 서사를 선보이고, 촬영 로케이션을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정했으며, 친중파 배우 유역비, 견자단, 공리 등을 주연 및 주연급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애초 기획 단계부터 반중 기류가 강한 나라들에서의 흥행을 포기하고, 중국 흥행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다. 중국 현지 관객들은 <뮬란>의 고증이 형편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생활양식, 복식, 사회 분위기, 정치문화 등에 대한 역사적 고증 없이 헐리우드에서 서구 중심적으로 각색한 설정들만 뒤섞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사 역시 설득력이 없고 공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로써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은 1998년 애니메이션 <뮬란>과 함께 디즈니 르네상스가 종결된 이후 시달리던 고질적 창의성 결여, 기획력 부재 문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예술행위의 종교성: 인간의 심층적 종교성으로부터 탄생한 예술행위

디즈니 산하 프랜차이즈 전체를 총괄하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입장에서, 아직 콘텐츠 사업 전반의 사업 성과는 크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OTT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기획력이 약화되던 중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분명 난관에 처해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뮬란>의 저조한 성적과 평가로 확인된 것처럼, 수익에만 몰두하는 문화예술 활동은 끝내 그 예술적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활동에는 경제적인 이익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의 예술활동은 애초 그 뿌리를 인간의 원초적 종교성과 초월 열망에 두고 있다.

인간의 이 심층적인 정서와 열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예술활동은 이미 그 뿌리를 잃어버린 바, 결국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뮬란
▲중국에서 얻을 수익에만 몰두하다가 예술적 가치를 놓쳐버린 <뮬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예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구석기 시대 크로마뇽인들의 라스코 동굴벽화,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들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 확인되는 인간의 원초적 종교성에 대해 언술한 바 있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이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들이 아직 문자를 갖지 못해 그에 대해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린 그림 대부분은 그들이 사냥하던 짐승들을 그린 점, 그리고 이 그림들을 대낮에 환하게 볼 수 있는 곳에 그린 것이 아니라 낮이든 밤이든 불을 피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에 그렸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다면, 이 그림들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냥감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술적 염원을 담은 것으로서, 동굴 속에서 행해지던 어떤 종교적 의식과 연관된 예술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인류 최초의 예술행위가 이처럼 삶의 풍요를 갈망하는 종교적-주술적 의미를 담았다는 사실은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종교성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예술행위는 분명 유희이자 놀이의 일환이지만 그 뿌리를 인간의 심층적 종교성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권태를 달래는 놀이와는 구별된다.

예술은 놀이 안에 삶의 근원적 의미와 다양한 가능성을 담아내려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체험하는 실존 본연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초월의 열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된 예술은 스스로의 기원을 잃어버린 유흥에 지나지 않는다.

<뮬란>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수익 추구에 몰두하다, 원작 애니메이션 전반에 표현된 자기 이해와 초월 열망 모티프를 잃어버렸고, 이로 말미암아 중국의 평작 무협영화 수준의 서사와 연출을 보여주며 평가와 흥행 양면에서 실패를 자초했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탈을 쓴 얄팍한 상업주의 예술의 필연적 귀결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다수 종교사상에 무관심하다 못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인간의 예술행위가 가지는 핵심 가치인 종교성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편향된 정치적 견해와 이익 추구 욕망을 채워넣으려 한다.

디즈니 계열 프랜차이즈 전반의 콘텐츠가 점차 그 매력을 잃어가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존재한다.

결국 디즈니 콘텐츠 제작자들의 편협한 인간 이해가 그들이 내놓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매력을 감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계속>

뮬란
▲실사영화 <뮬란>은 원작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던 매력 대부분을 상실한 영화로 평가되고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