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혼란상, 서구 모방해 성·인권 윤리 급조 결과
신앙윤리 배제된 권력의 부패 가능성과 위험성
박원순 전 시장 자살,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
◈권력과 성추문: 성적 타락과 비행은 권력자의 당연한 권리인가?
고위급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성추행, 성폭행, 불륜 비위가 발각될 때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생각한다. 대체 왜 우리 나라에서는 진정으로 가정과 배우자에 충실한 권력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가?
그런데 이는 사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동일하게 고민하는 자조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권력의 상층부에 올라간 인물 치고 성적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많지 않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많아서 그렇지, 거의 대다수 권력자들은 권력과 지위가 주는 쾌감에 취하는 즉시, 성적 방면으로 몸과 영혼의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다만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런 일을 당연시하느냐 죄악시하느냐 차이가 있을 뿐인데,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남자가 출세하면 그쯤이야 당연한 일이라는 사고가 수천년간 사람들의 성관념을 지배하고 있었다.
중국의 경우 그 유래를 알기 어려울 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영웅호색(英雄好色), 군왕무치(君王無恥)'라 하여 권력자들의 성 문제나 성 관련 비위를 당연시하다 못해 영웅과 권력자의 필수적 표식 정도로까지 여겨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후한말 천하를 두고 다투었던 조조와 원소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어려서 막역한 친구였는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자주 불량한 일탈 행위를 즐겼고, 하루는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의 신부를 납치해 강간하려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일화는 정사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야사나 소문 등을 수집해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적힌 것으로서, 역사적 신빙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역사적 신빙성 여부가 아니라 그에 대한 당대와 후세 중국인들의 평가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심각한 가정파괴 범죄행위라 할 수 있는 일인데, 중국에서는 이 일화를 두 사람의 영웅적 측면(기존의 관습과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과단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해석해 왔다. 이와 같은 사고는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수천년간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을 고착화시키는 대의명분으로 자리잡아 왔다.
서구에서도 중세에 들어와 기독교 선교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권력자의 성 문제나 성 관련 비위에 대해 그리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권력자들이 군사, 행정, 경제 등 정치적 사안만 적절하게 처리할 줄 안다면, 개인의 성적 타락 정도는 별 흠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이다. 2세기경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이끈 5현제 가운데 세 번째 황제였던 그는 아내인 사비나를 버려두고 그리스의 안티노우스라는 청년에게 빠져 산 경력이 있다. 중증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치세만 잘 한다면 웬만한 성적 비위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로마 대중의 중론이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폭군의 대명사인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가 있다. 친모와의 근친상간,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는 성적 문란함으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정작 네로가 그렇게 성적으로 타락한 일 자체가 그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네로 황제 치세 초기에는 로마 시민들이 오히려 그를 지지하고 존경했는데, 이는 세네카 등 명신(名臣)들의 도움을 받아 현명한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네로가 몰락한 것은 심해지는 과대망상증과 권력도취 때문에 문화예술과 사치향락에 국가예산을 탕진해 세금을 크게 올렸고, 그로 인해 로마 시민들과 속주에서 반감이 고조되고 반란이 일어나 이를 과격하게 진압한 데 주된 원인이 있었다.
즉 개인의 도덕적 타락(특히 성적인 타락) 자체보다는 치세에 실패했던 것이 몰락의 주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황제들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식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육체의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 도덕적인 삶을 방해한다고 믿었던 일부 스토아 철학자들은, 권력자들의 부패한 행실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로마 제국 전체로 봐서 소수 엘리트들의 견해였을 뿐이다.
◈권력과 신앙윤리: 권력자의 성적 비위를 범죄시하는 사상배경은 무엇인가?
세계 문명사 전체를 돌아볼 때, 권력자의 성 문제와 비위를 처음 본격적으로 문제시하기 시작했던 것은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성적 타락과 비위는 본질적으로 육체의 추악한 죄성의 일환임을 굳게 믿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추악함이 군주와 권력자들을 아득히 넘어서는 권세를 가지신 분, 모든 권력과 권위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에 권력자들조차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중세 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저 <고백록>(Confessionum)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는 젊은 나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던 시절 정식 결혼 없이 한 여성과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맺었고, 회심 이후 이 일에 큰 괴로움을 느끼다 끝내 그녀와 헤어져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이 일을 계기삼아, 아우구스티누스는 여러 죄악의 원인들 가운데 유독 성적 욕구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고, 성적 쾌락을 통해서만 자녀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생식원리 자체를 원죄의 한 대표적 증거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이 일은 후세 신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례가 입증하는 바는 인간의 성적 비위에 결부된 죄성을 폭로하는 데 기독교 신앙이 큰 역할을 감당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권력자가 성적 쾌락에 탐닉하고 위력으로 여성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해도 치세만 잘하면 된다는 오래된 생각은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물론 기독교 선교가 유럽 전역에 이루어지고 난 후라도 권력자, 권세자, 유력자들의 성적 비위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조차 세속화되고 타락해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불륜과 축첩을 일삼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신앙의 관점으로나 도덕의 관점으로 볼 때 죄악이라는 인식만큼은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구에서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가정생활 및 성 관념에 대해 비교적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오래된 사회 관행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이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을 그들의 정치력과 공로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문화도 존재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3세(1738-1820)이다. 어린 시절 자폐증의 영향으로 지능이 약간 떨어졌고 이 때문에 외교와 대외정책에서 처참한 실패를 반복했던 인물이지만(7년 전쟁 당시 동맹이었던 프로이센과의 관계 악화, 미국 독립전쟁 패배 등), 왕실의 사치 향락을 금하고 일평생 아내인 샬럿 왕비만 사랑하며 단 한 번도 외도를 한 일이 없어 국민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기독교 신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구에서는 이처럼 위정자가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가정에서의 신앙윤리 측면에서 온전하다면 그 삶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정착되었고, 혹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신앙윤리 측면에서까지 뛰어나면 더할 나위 없는 존경을 받게 되었다.
가깝게 보자면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나 현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이제 故 박원순 전 시장의 자살이라는 주제로 돌아와 보자. 사실 한국의 전통적 문화조류 및 도덕관념은 전반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유교 사상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급속하게 진행된 세계화 때문에 피상적으로나마 서구적 윤리관을 모방해 도입하고 있을 뿐이다.
현 집권층 유력자들 일부가 성추행, 성폭행, 불륜 등의 문제로 사회적 신망을 잃거나 정치경력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유래된 윤리관이 도입되었기 때문이지, 우리 사회 내부에서 권력자들에게 적용되는 온전한 성윤리, 인권윤리가 자체적으로 발동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공자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오래된 가르침이 있지만, 그 안에 성적 비위를 멀리하라는 지침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물론 유교 사상도 군자(君子)가 육체적 욕구에 탐닉하는 저열한 행실을 멀리할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성적인 문란함이나 타락을 경원시하는 정서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주로 일반인이나 여성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되어 왔으며, 권력이 있는 남성에게는 매우 관대하게 적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황이 알려주는 사실은, 기독교적 신앙 윤리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한국의 위정자들, 권력자들에게는 성적 타락이나 비위가 실상 그리 중대한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서구의 기독교 신앙윤리에 입각한 성윤리, 인권윤리 물결에 휘말리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애초 생전 박원순 전 시장 본인의 삶의 모순이, 그리고 이 모순을 애써 부정하려는 현 진보 정권 옹호자들의 행태가 이를 입증한다.
故 박원순 전 시장은 본인 스스로가 서구적-기독교적 인권 개념의 일환이었던 성희롱, 성추행의 위법성을 국내 법조계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면서도, 그런 성윤리의 기본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몸소 체득하지는 못하고 스스로의 성적 비위가 원인이 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또 지난 한 주간 그런 그의 성적 비위를 어떻게든 무마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했던 유교적 성관념에 기대 그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려 한 일부 친여권 인사들의 언사도, 결국 기독교 신앙윤리에서 출발한 서구적 성윤리, 인권윤리를 체득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가련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제반 범죄 문제를 일선에서 직접 처리하는 여성 검사가 故 박원순 전 시장에 의해 성추행을 당해온 피해자를 저열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한국의 전통적 여성관, 인권사상이 얼마나 편향적이고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권력자, 위정자, 정치인, 유력자들의 성 관념은 기독교 신앙윤리, 기독교 신앙 정신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항상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한, 오히려 피해 여성을 같은 여성들이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는, 구시대적이고 비윤리적인 사고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권력을 쥔 유력자들의 심중에는 어느 순간 성범죄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지 모르는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들과 관료들의 성적 타락이나 비위는 비일비재한 일이었지만, 기독교 신앙윤리에 입각한 성관념을 갖고 있던 서구에서는 적어도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 범죄라는 인식이 마지막 제동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그런 제동장치조차 없다가, 서구의 것을 모방한 급조된 성윤리와 인권윤리를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혼란상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것을 받아들이고 정착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살을 선택한 박원순 전 시장의 불행한 말로에 대한 갑론을박은 아직 한국에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올바른 여성관, 인권사상이 정론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증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양분된 평가조차 내놓을 수 없었던,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권력을 가진 남성만을 옹호하던 우리의 앞 세대에 비하면 상황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 볼 수 있다.
故 박원순 전 시장의 자살은 향후 신앙윤리가 배제된 권력의 부패 가능성과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대표적인 사례로 길이 기억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