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현 정권 오판으로 신음하는 지금, 오판 총책임자와 기쁨 나누는 이중 면모
봉 감독도 비천한 자들의 현실 이용할 뿐 진정 연민하지는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
<기생충> 속 휴머니즘과 전혀 상반된 현재 상황, <기생충>의 플롯 그대로 재현해
◈전염병과 문화예술: 전체적인 침체 속 그들만의 축하 잔치
최근 영화계 및 공연 업계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우한으로부터 발생한 전염성 폐렴 때문에 사람들이 공공장소 방문을 피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상영관이나 공연장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에 일정 시간 함께 머무르는 장소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우한폐렴의 기세가 한순간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권 수뇌부가 방심하는 사이 신흥종교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줄여서 신천지 교도들에 의해 다시 대폭 확장되면서, 정부 당국과 대구경북 지역사회, 그리고 신천지 지도부 모두를 크게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현재의 재난은 일차적으로 현 정권이 중국 여행객 전면 입국 금지를 감행하지 않은 데서 기인했다는 점, 여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결코 전문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순전히 정치외교적 계산에 의해 내려진 이 결정 때문에, 국내에서는 언제 어디서고 전염병이 확산될 소지가 다분했던 차다.
여기에다 일반적 종교 단체로 보기 어려운 신천지가 전염병 확산의 기폭제가 된 것은 우리 국민 전체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불행이다.
상황이 어느 수준까지 악화될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 여타 업계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는 상당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통상 목숨까지 걸고서 영화나 공연을 보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과 같이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기반 OTT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상영관과 공연장 등은 더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청와대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경사를 축하하는 작은 이벤트가 벌어졌다. 아카데미상 네 개 분야를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스탭들이 초청돼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나눈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그런 유쾌한 이벤트로 끝났을 이 행사는, 행사 당일부터 국내 우한 폐렴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는 사건으로 성격이 변하고 말았다.
대한의사협회의 시급하고도 전문성 있는 청원(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반드시 먼저 중국 여행객 전면 입국 금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력 건의)을 무시해 방역에 전면 실패한 총책임자가 희희낙락하며 문화예술 이벤트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은, 현 정권 주요 인사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전임 대통령의 위기대응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염병과 기생충: 중세 흑사병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지난 회차 논평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현 중국과 한국 위정자들의 우한 폐렴 대응 태도를 평가하는 데는 중세 서구 흑사병 창궐 시 기록이 많은 도움이 된다.
혹자는 죽음에는 빈부귀천이 없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말일 뿐이다. 실제 죽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빈자와 부자, 신분이 낮은 자와 높은 자 사이에는 제법 확연한 차이가 있다.
죽음은 대개의 경우 부자와 강자보다는 빈자와 약자를 훨씬 더 강도높게 위협하고 고통을 준다.
중세 서구에서도 흑사병 사망자 비율은 귀족 영주나 부유한 전문직 자유민보다 농노와 도시빈민들 편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치료약이 없었기에, 일단 흑사병에 걸리게 되면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대개 다 죽음을 맞이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귀족이나 부르주아 측은 일단 병에 걸리는 비율 자체가 훨씬 낮았고, 당연하게도 비율상 인명 피해를 적게 봤다. 반면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은 제도적으로나 개인적 여건상으로나 발병 지역에서 도망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위생과 영양 상태 모두 열악해서 전염병의 위협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가난하고 비천한 농노들과 도시빈민들의 인구 격감은 흑사병이 지나간 이후 노동력 품귀현상 및 급격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져, 14-15세기 빈민들이 도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길을 이전보다 크게 넓혀 주었지만, 이는 모두 그때까지 죽어간 수백만, 수천만 명의 희생 덕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온갖 방식의 철저 방역을 거진 청와대에서 칭송한 영화 <기생충>은 빈부 격차의 참혹하고 비루한 현실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하여 오스카상 4개 부문을 석권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실 특정한 양태의 무익한 삶을 사는 인간들과 그들에게서 나는 비루함의 향취를 기생충의 특성에 비유하는 문학적 모티프는 이미 150여년 전 집필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의 소설 <죄와 벌>에서 따온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취급을 받는 오늘날의 저소득층들 역시 나름의 초월 욕망과 생존 본능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던 듯하다.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들이 부잣집에 기생해 살아가려 온갖 모략을 동원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비열하고 비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처량하고 연민스럽기 그지 없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기생충같은 인간들이라도 조금이나마 연민해줄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던 듯하다. 이런 면으로 볼 때 그의 작품세계는 분명 휴머니즘을 추종한다.
그러나 작품 속 휴머니즘과는 전혀 상반되게, 현실의 서민들이 현 정권의 명백한 오판으로 신음하고 고통받는 지금, 그 오판의 총책임자와 오스카상 수상의 영광을 나누는 모습은 다분히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 또한 빈자들, 비천한 자들의 현실을 작품에 이용하기만 하지, 진정으로 연민하지는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금번 우한 폐렴 사태와 <기생충> 팀의 청와대 오찬 소식을 보며 재삼 확인한 바는, 인간의 본질 심성 즉 타락한 심성은 시대가 아무리 지난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염병의 규모나 양상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중세 서구나 오늘날 중국과 대한민국이나 집권자, 권세자, 유력자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이익을 부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 그들이 책임져야 할 일반 시민의 방역이나 치료에 대해 실질적으로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별반 관심이 없으니까, 자신들의 이익과 정치적 계산에 따라 친중 사대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의 청원까지 무시하고 무익한 대책들만 고수하는 것은 아닐까?
위정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기독교회를 사칭하는 신흥종교단체가 병을 퍼뜨리는 슈퍼 전파자로 등장한 현재의 역병 상황은, 일반 시민들 모두와 함께 기독교계에도 여러 모로 고난을 야기하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현 상황은 <기생충>의 플롯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한국 국민 대다수가 <기생충>의 사회적 강자 박동익 사장(이선균 분)처럼 스스로를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기생충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