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든 때를 좋은 때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울 때가 기회라고 말한다면 소수라도 동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구에서 무사 만루일 때 오히려 점수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일 때도 골을 못 넣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뭐냐? 고 묻는 다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 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분명히 어려운 때입니다. 그런데 고난의 때에 쉬워지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유다가 앗수르에 포위를 당했을 때 히스기야는 기도했습니다. 이때도 기도 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위기가 기도를 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벽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이때도 기도 안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기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쉽게 기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최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다시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다시 능력이 생기기 때문 입니다. 그럼에도 고난의 때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망하려면 2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는 극심한 고난과 절대 기도 안하기가 만나면 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때에 신앙인의 입에서는 기도를 하려 하지 않아도 기도가 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억지로 막아야 합니다. 도저히 참지 못하면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를 막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되는 것이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성도는 완전히 망하기도 힘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고난이 오면 기도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부르짖음은 꾸밈이 없고 진실이기 때문에 모방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의 아름다움은 좋은 옷이나 좋은 차가 가치를 올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기도가 가치를 높여줍니다. 그래서 불행이, 불행이 아닌 은혜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 기도를 기회로 삼아 일어서야 합니다. 기도하면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강함이 뭘까요?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은혜가 임하면 의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강하고? 행복한가? 2가지 조건이 맞을 때입니다. 아무도 부럽지 않아야 하고 아무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이 가져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것을 가졌어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면 부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주님만으로 만족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 아니면 망할 거라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고난과 나쁜 환경에서도 인물은 나옵니다. 거기가 하나님이 돕는 은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김병규 칼럼]신앙인은 완전히 망하기도 힘든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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