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국에는 빈대가 참 많았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불을 켜면 미처 도망가지 못한 빈대들이 허둥대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었는데, 그 빈대들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릴 때라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할머니가 스님이셨던 관계로 그냥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 빈대가 다음 생에는(?) 빈대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오히려 그때 생명을 더 귀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여유가 없어서, 요즘처럼 강아지에게 50만원 짜리 반려견 전용 유모차를 사 준다거나, 한달에 78만원을 들여서 반려견 전용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불에 달군 시뻘건 꼬챙이로 케이지에 갇혀 있는 고양이를 찌른다든지, 살아있는 개에 불을 붙여 죽인다든지... 뿐만 아니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들을 영상으로 찍으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정말 세상이 미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정말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이 시대의 풍조는 사실 동물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번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는 이 시대의 생명경시풍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춘재는 자신이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자 이제까지 알려진 살인 말고도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특별히 1989년 7월 화성에서 실종 처리되었던 8살 김모 양을 자신이 성폭행한 뒤 살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아~ 어찌 그럴 수 있을까요? 자기 욕정 채우자고 어떻게 8살 어린 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평생 그 슬픔을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기가 키우는 개를 한달에 78만원 짜리 유치원에 보내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자기의 반려견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만큼 생명을 귀히 여겨서 그러는 것일까요? 이춘재를 보며 천하에 죽일 놈이라고 욕을 하는 우리는, 그런 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정말 우리와 상관없는 생명들을 귀히 여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도 굶어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의 어린 아이들에 관하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제 오늘, 새생명콘서트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무릅쓰고 사랑하셨던 영혼들, 죽기까지 구원하길 원하셨던 영혼들, 하지만 복음을 듣지 못해 지금도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생명을 경시하는 마음은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시작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
[장홍석 칼럼]생명경시풍조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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