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디서 왔습니까? 거주, 이전, 결사와 집회의 자유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질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그 좋은 환경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따져보지도 않고, 그 귀중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세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자유는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장악한 왕, 귀족과 교회는 개인의 자유를 오랜 동안 제한하여왔습니다.
역사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던 시대는 16세기 중세 이후입니다. 중세에서 탈피하도록 도운 가장 커다란 정신적 흐름을 우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켄틴 스키너(Quentin Skinner)는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I, II」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이라고 확인해줍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생겨난 인문주의와 그리스 고전에 대한 재발견, 그리고 독일, 스위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피어난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은 북유럽의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도의 자유"를 매우 귀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주여, 내가 여기 서있습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심한 개인을 기초로 한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개개인 성도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캘빈과 캘빈주의자들에게도 성도의 자유는 생명을 걸고 싸울만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개인적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의 자유를 지켜나갔습니다. 억압적인 국가와 교권적인 교회에 대항하여, 시민의 자유에 의거하여 공화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종교개혁자, 특히 캘빈주의 전통에 선 장로교인들과 청교도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오직 중요한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왕들 위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무엘 러더포드와 같은 청교도는 하나님의 법이 왕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법과 왕」(Lex Rex, 1644)이라는 유명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청교도 혁명은 개신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공화제와 자유를 위하여 일으켰던 역사 최초의 급진 혁명이었습니다. 캘빈주의자는 이처럼 자유로운 세상에 열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와 같은 가치는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이처럼 신분과 재산에 관계없이 각성된 개인에 의한 정치참여,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정치질서를 세운 미국이 유럽의 정체된 사회를 넘어 미래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을 자신의 책 「미국의 민주주의」(1835)를 통해 내다봅니다. 심각한 투쟁과 헌신의 바탕위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라는 신학적인 기초를 생각하면, 지금 같이 토대가 흔들리는 어지러운 시대에 성도들의 사회적 관심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요소인 것 같습니다.
[민종기 칼럼]자유민주주의의 신학적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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