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많은 기념일들이 이어지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특히 가정의 달을 맞아, 경로효친 사상을 본받고 언행으로 실천하며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달과 경로효친 사상과 정신은 말이나 구호보다 실천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효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주 찾아뵙고, 안부전화나 영상통화를 통하여 부모님들의 건강을 살피며,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최고의 예우요 효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945년 9월 7일 1982년 1월 4일까지 야간 통행금지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였습니다. 1982년 전두환 정부에 의해 통금 시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통금의 대상은 당시 만 13세 이하 어린이와 만 19세 이하의 청소년들은 기본이고, 19세 이상 성인들까지였습니다. 통금 시간이 해제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새벽 시간에 일부러 길거리에 나와, 마치 해방이라도 된 것처럼 자유를 느끼며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장발 단속이 시행되었습니다. 장발이 사회 퇴폐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머리를 강제로 삭발당하고, 지나가던 많은 젊은이들도 단속에 걸려 삭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학생 때는 머리를 짧게 깎고 모자를 쓰고 다닌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 교복은 개화기에 학교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남학생들 교복은 미국인 선교사 H. G. 아펜젤러에 의해 배재학당에서 1898년 '당복'을 학생들에게 입힌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복'은 당시 일본의 학생복과 비슷한 밴드칼라(쓰메에리) 형태였는데, 소매 끝, 바지의 솔기부분, 모자에 청 홍선을 두른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학생복이라 하여 1879년 가규슈인을 시초로 1886년 도쿄 대학이 밴드칼라, 금 단추를 제복으로 한 데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최초의 양장 교복은 1907년 숙명여학교에서 처음 실시됐으나 1910년경 다시 한복을 착용하게 했고, 193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학교에서 양장 교복을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라우스, 스웨타, 주름치마, 세일러복, 타이, 모자 등을 주로 착용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른 1940년대에는 한국 학생들에게도 전투태세를 갖춘 전투복으로 교복을 통일해 착용시켰습니다. 여학생은 '몸빼'라는 작업복으로 바지에 블라우스를,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혔습니다.
해방 후인 1969년 문교부의 중학교 평준화 시책이 실시되면서 교복은 도별로 획일화됐고, 1986년 2학기부터 학교장 재량에 따라 교복 착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991년에는 절반 가량의 학교만 교복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채 자신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참 민주주의인 양, 세상은 변해 버렸습니다. 질서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점점 더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현실을 보노라니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움만 채워져, 위장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속이 좋지 않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 얼굴에 화장을 합니다. 그러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머리는 각종 색깔로 넘쳐 납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어디 가고 어른들의 사치 풍조에 힘입어 얼굴에 치장하는 시간이 주를 이루며, 담배는 이제 대놓고 피워댑니다.
곁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계셔도 아랑곳 하지 않고 뿜어 대는 담배 연기는, 나라 미래를 향한 걱정스러움으로 타들어가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앞날이 걱정으로 채워집니다.
특히 요즘 학생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시인하거나 인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무조건 거짓말부터 시작하여 거짓말로 끝이 납니다.
심지어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창문을 부순다거나, 창문에 설치된 모기장을 칼로 찢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심한 욕설을 그대로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 나라에 미래가 있는지 우려가 됩니다.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중학생들이 한 참 등교할 때였습니다. 한 여교사의 승용차가 지나가다 마침 한 1학년 남학생에게 흙탕물이 튀었습니다. 이 학생은 갑작스럽게 튄 물을 피하면서, '대뜸 XX년'이라는 욕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광경을 본 제가 '선생님에게 욕을 하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도리어 저를 째려보면서 '뭐? 뭐!' 하면서 의기양양한 기세로 달려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침 지나가는 다른 선생님께서 말리셔서 일단락되긴 했지만, 너무나 기가 막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엊그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어찌 이럴 수 있을까요! 한참을 하늘만 멍하게 쳐다보며 연신 내뿜던 긴 한숨에, 땅까지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길거리에서 남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고, 심지어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은 주위의 시선에는 관심도 없이 키스를 하는 등 자신들만의 애정행각으로 즐거워합니다.
▲10대의 길거리 애정행각을 훈계하다 폭행범으로 몰린 한 남성의 인터뷰 모습. ⓒ방송 캡처 |
그뿐인가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에 혐오감을 주는 욕지꺼리는 이제 표준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기들끼리의 소통과 대화는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끝납니다.
심지어 남학생들 화장실에 여학생들이 몰려들어 함께 담배를 피우거나, 애정행각은 물론 성관계까지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들키면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쇼를 합니다.
남들의 이목은 아량곳 않은 채, 여학생들이 남학생의 성기를 잡고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나 싶습니다. 보릿고개를 넘어 나라와 후세들의 미래를 위해 많은 부모 세대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놓았는데 말입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이 나라가 그저 된 것처럼, 자신들의 편리만을 위해 쓰던 물건들을 마구 버리고 있습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시대로,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입고 싶었던 좋은 옷을 마다한 채 절약하며 이 나라를 이렇게 부강하게 세워 놓았더니,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이 생겨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음 세대가 이토록 처참하게 변해 가고 있을까요. 필자는 가정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한 이후 급격하게 가정의 위계질서가 무너졌고,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까지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다 보니 자녀들은 이기심과 의타심만 갖게 돼,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공중도덕과 사회질서를 철저히 가르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엄격한 훈계와 사랑의 매가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다 보니 사회 전반에 악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 '사람이 살면서 제일 힘든 일은 무엇일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단연코 '자녀를 키우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사춘기가 되면 '저 아이가 내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키우기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여러 환경을 핑계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결혼을 하면 자녀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아 키우려고 합니다.
성경에 분명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 있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과 편리에 의해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그뿐입니까.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허락하려 하고, 낙태라는 살인까지 면죄부를 주려 합니다. 그런데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 권력의 눈치 보기만 급급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감당하실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구나 사이비 이단들이 활개를 치는데도 모르쇠로 함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양들이 포식자들에 잡혀가야 정신을 차릴런지요!
기독교 학교들은 어떻습니까? 예배가 사라지고, 아이들은 주일을 지키는 대신 학원으로 갑니다. 믿는 가정에서도 교회를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 주일이면 빨간 성경책들이 거리마다 꽃이 피었습니다. 그 시절 성도들은 이웃과 사회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고, 정직하였으며, 아픔과 고통의 자리에는 함께 그 고통을 분담하고 위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독교인들은 사회로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어 심히 민망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교회 안에 주님은 안 계시고, 모두 자신들이 주님처럼 판단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교회, 깨끗한 성도, 깨끗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님의 재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예배하며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