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참신이자 참인간이셨다. 인간이 겪어야 하는 선악과 추한 모든 것을 그분 역시 경험하셨다.
더가스펠코얼리션(TGC)은 최근 칼럼에서 "만약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강조하면서 몇 가지 예를 소개했다.
예수님은 가난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끝없이 이어지는 결제가 누군가의 실제적인 삶일 수 있다. 춥고 배가 고픈 상태로 잠드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하나님은 아실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가난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셨다. 그분은 집이 없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이들과 더욱 연대하실 수 있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눅 9:58)
예수님은 소진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이를 인정하도 좋다. 언젠가 우리 역시 피곤해질 때가 온다. 예수님께서는 지침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그분은 항상 걸어서 이동하셨다. 또 십자가를 앞둔 상황에서 그동안의 교훈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누가 높으냐를 두고 싸운 제자들을 가르치셔야 했다. 아픈 이들을 치유하고 죽은 이들을 살리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는 등 선한 일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슬픔으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 아셨다.
예수님은 두통, 슬픔,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이 훼파된 모습을 보시고 우셨다고 기록돼 있다. 그 다음은 사랑하는 친구인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우셨다. 그분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슬픔도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셨다.
예수님도 슬픔과 지침을 아셨다는 사실은 여러분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님은 물론 상관하지 않으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죄 때문에 유혹을 받는 자들을 이해하실 수 있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아픔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우리가 아픔 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통을 정확하게 아시는 구주가 계신다. 그분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과낳여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라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육체적인 고통을 견디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셨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현실이 그러했다 할찌라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은 오직 그분의 자녀들을 위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난 너를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하신 말씀은 진리이다.
평범하고 소박하게.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셨다. 그분은 배가 고팠고, 목이 마르셨다. 잠도 주무셨고, 무엇인가 배우셨다. 그분은 성장하셨고, 사랑하셨다. 그분은 기뻐하셨고, 화를 내기도 하셨다. 때로 괴로워하셨고, 기도하셨다. 믿음을 드러내셨다. 성경을 읽으셨고 병든 자를 보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분은 죽음을 보고 우셨다. 오래된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의 가사와 같이 그분은 우리의 모든 약함을 아신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는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