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LA거리를 예수님께서 걸어가신다면 어떤 표정으로 걸어가실까요? 예수님께서 어느 교회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하신다면 어떤 표정으로 말씀을 전하실까요? 나사렛과 갈릴리 마을을 걸어 다니셨던 예수님은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디베랴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셨던 예수님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던 작품들 중에 예수님의 미소를 그린 그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화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얼굴은 늘 근엄하고 진지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성화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아무런 감정이 없으신 것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근엄하고 무서운 예수님이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셨던 예수님은 우리들과 같은 희노애락의 정서를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성전에서 탐욕스런 장사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빈들에서 저녁을 맞으며 피로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슬퍼하시며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감성이 풍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 기뻐하셨을까요? 성경은 예수님의 기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표현된 대표적인 경우가 누가복음 10장 21절입니다.
70인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 기쁨의 전도 보고를 합니다. 제자들은 전도현장에서 임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체험하고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을 축하하고 축복하면서 귀신들이 항복하고 귀신들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70제자들이 전도에 승리하고, 그들의 이름에 하늘에 기록된 것을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의 기쁨의 기도는 22절까지 이어지지만 예수님의 기쁨은 21절에서 설명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전도 보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그저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충만한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온전한 기쁨을 누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의 충만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만 기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쁨을 소유하셨던 것은 당대에 잘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 제자들에게 권면과 축복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기쁨을 누리기를 축복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쁨을 누리고 계심을 전제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하신 삶을 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행복하게 사셨던 것입니다. 기독교 행복학자인 죤 파이퍼 (John Piper) 목사는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행복하신 분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필자도 동의합니다. 예수님은 늘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사셨을 것입니다.
만일 필자가 화가라면 환하게 웃으시는 예수님을 그리겠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시며 파안대소하시는 예수님을 그리겠습니다. 어린 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다정히 웃으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담고 싶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거리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셨을 것입니다.
필자는 자주 예수님의 미소를 상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면서 미소를 지으시리라 믿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믿음대로 살려고 몸부림치시는 장로님을 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피곤을 무릅쓰고 새벽기도 나오셔서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권사님을 보시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찬양을 망쳐 속상해 하는 지휘자와 반주자 등을 토닥거리며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준비한 원고대로 설교하지 못해서 속상해하는 목사님에게 고개를 끄떡이며 미소 지으실 것 입니다. 필자는 사랑과 관용이 풍성한 예수님의 미소를 상상하면 행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삶을 보시며 미소 지으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미소가 떠나지 않는 행복한 하루를 보냅니다.
행복 설계사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