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진보 정치계에서 활동한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먼저 그 가족과 지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슬픔을 나눈다.
슬픔과 별개로, 이런 허망한 죽음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 또한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가는 것은, 그가 연설에서 소개한 6411번 버스의 첫 차를 타고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도덕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면, 살아가면서 속죄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몇 년째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렇듯 높은 자살률은 '유명인들의 자살'이 소위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킨다는 연구와도 맞닿는다. 정치인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안상영 전 부산시장, 성완종 전 의원 등이 유명을 달리했고, 연예인들의 자살 사고도 최근 떠난 샤이니의 김종현 군을 비롯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정말 말 그대로 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야' 할 때다. 사회에 공헌하고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고 끝까지 버텨내는 용기와 책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죽음으로 이 모든 것을 일시에 뒤집으려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생명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문화를 위해, 이를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망자(亡者)에 대해 유독 관대한, 유교 문화 특유의 뿌리깊은 인습도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못다한 말을 죽음으로 하려 했다 해도, 언론 등에서 이를 지나치게 미화해선 안 된다. 서양 문화에서 정치인들의 자살이 우리처럼 많지 않은 것은 그러한 부분의 차이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애도는 그대로 하되,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목숨을 끊었다 하더라도, 모두 용서하고 덮어버려서는 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울 수 없다. 차라리 살아남아 그 오명(汚名)을 선행으로 다시 뒤집어가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패자부활전'이 절실하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노 의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하고 있지만, 그를 넘어 찬양하는 데로까지 옮겨가선 안 되는 것이다. 더불어 벌써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음모론의 완벽한 차단을 위해서라도, 경찰은 마땅히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
생명 중시를 위해 달라져야 할 우리 문화는 더 있다. 조그마한 흠결에도 산더미같은 조롱과 비난을 안기는 인터넷 댓글 문화부터 개선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고, 빛과 어두움이 존재하는 법 아닌가.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추상같은 '내로남불'이어서도 안 된다. 비판의 대상은 늘 가장 먼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렇듯 이분법적으로 사람과 사안을 판단해선 갈등과 분쟁만이 계속될 것이다. 잘못이 하나 발견됐다 해서,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부정하고 무시해 버리는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파편적인 사실 몇몇만으로 섣부른 추측과 단정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직종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 도덕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긴 하나,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성서가 일관되게 말하는 인간관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찾아오셨고, 복음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정치를 바라볼 때, 한 쪽을 완전한 '선(善)'으로 칭송하고, 다른 쪽을 파렴치한 '악(惡)'으로 매도하는 행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란 '선과 악'의 대결장이 아니다. 대결중인 남북 간에도 상대편을 '악'으로 규정하지 말자던 이들이, 같은 나라 안에서 국민들의 발전과 행복의 방향을 놓고 '방법론'의 차이로 경쟁하는 이들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한, 이러한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문화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압축성장으로 이제까지는 모든 것을 빨리 빨리 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여유가 필요하다. 명암은 있겠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남의 시선을 그리 의식하지 않는 '소확행' 등이 다행히 확산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문화를 이끌어, 이 땅에 생명의 문화가 충만해지도록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특히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자살예방 운동'에 한국교회 차원의 관심이 더욱 시급하다.
청소년 자살, 노인 자살 등 이 나라에서 취약계층과 사각지대를 살펴볼 이들은 교회뿐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기존의 기독교계 자살예방 단체들을 지원하고, 유가족들을 돌보아야 한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말하기에 앞서, 자살 고위험군을 살뜰하게 챙기고 그들에게 희망을 부여하는 것이 교회가 먼저 할 일이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부터 이런 문화를 확산시켜, 분열의 문화를 청산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서도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회에 '화합'을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