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가 없는 사람은 좌충우돌하며 삽니다. 아무리 훌륭한 결단을 해도, 주변에서 누가 '꼬시면' 홀딱 넘어가고 결단도 흐지부지, 아니 결단의 결론도 바뀌어 버립니다. 모든 것이 철학의 부재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몇 주에 걸쳐, 2005년부터 교회의 분쟁과 아픔 가운데 2016년 11월까지 적어왔던 목회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려 합니다.
그것은 제가 청년이면서 성도일 때부터 부교역자, 그리고 담임으로 사역하면서 계속 다듬어진 철학이고, 상황이 바뀐다고 다짐이 변치 않기 위한 지난 기간 저를 위한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낙서로 시작한 끄적임은 현재 제 목회의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편지를 통해 제 목회 방향성과 철학을 여러분들과 나누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라는 슬로건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그에 대한 세부적 목회철학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시간으로 다음 시간까지 설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설교에 대한 목회 철학과 점검]
1. 설교를 준비하기 전, 점검 사항
1) 설교를 내 생각과 이익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말자. 설교는 목사의 무기가 아니다. 하나님 말씀이다.
-목회자가 자기 욕심에 눈이 멀면 설교를 자기 부인이 아닌, 자기 강조의 메시지로 전환하게 됩니다.
2) 모든 성도는 목사를 포함해 하나님 앞에 모두 같은 길을 걷는 양이다. 오직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설교자가 됐다면, 하나님 앞에 자격없는 목자이므로 더 부끄러운 마음으로 설교해야 한다. 늘 겸손해야 한다. 설교자의 가장 큰 덕목이다(요 21장).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것 같습니다. 쉽게 대장되려 합니다. 겸손해지고 싶습니다.
3) 사람은 삶이 반복되면 바른 생각을 잊기 쉽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지도자가 아님을 늘 인식하기 위해, 구조적으로라도 다른 분을 설교자로 정기적으로 세우라. 철저히 듣는 훈련을 하라.
-목회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종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라는 자리에 앉아있는 삶이 반복되면, 사람들의 존경어린 언행을 통해 정말 자기 자신이 높아져 버립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라도 목회자는 듣는 자리로 돌아갈수 잇도록 해야 합니다.
4) 듣는 훈련을 한다 해서 세상적으로 알려진 목회자의 말씀을 듣는 것을 반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본인이 첫 설교를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이 아무리 바르다 해도 기술적으로는 부족했던 것처럼, 기술적으로는 별로인 것 같은 설교라 할지라도 연약한 교회나 목회자의 설교가 하나님께 순전할 때가 많다.
-이른바 잘 나가는 목사님 설교 듣는 게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무엇이 가장 하나님 보시기 좋은 설교일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쉽습니다. 처음 설교입니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문맥도 매끄럽지 않지만, 그 설교는 정직합니다. 순수합니다.
5) 그러므로 설교자는 늘 첫 설교 자리에 올랐던 그 마음 그대로 설교 준비를 해야 한다.
6) 가장 훌륭한 설교는 성경이다. 성경을 읽고 스스로 소리내 읽고 듣는 훈련이 가장 뛰어난 영적 훈련이다.
-때로 성도들에게 가장 훌륭한 설교가 성경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설교 대신 때로는 성경을 함께 정독하며 의미를 찾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가르침은 언제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7) 설교를 준비하는 데 있어 다른 책자를 활용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하는 일임을 잊지 말고, 주어진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
2. 설교 준비와 방법에 대한 고찰
1) 매 주일예배가 끝나면, 바로 그날 저녁 다음 주 성경 본문을 적고 중요한 단어와 한 문장의 강해를 기록해 둔다. 주일 당일은 가장 피곤하지만, 가장 영적으로 다듬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다음 주일 본문 말씀을 인지하고 적어두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첫 출발입니다.
2) 한 주간 내내 살아가면서 주일 저녁 적어둔 그 구절을 통해 성경 전체를 바라보고, 한 주간의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는 것에 집중한다.
3) 설교 이틀 전인 금요일에는 기본 원고를 완성하여 구조적인 틀을 완성시킨다. 남은 원고 작업에 어떤 내용이 추가된다 하더라도 쉽게 수정이 가능하기 위함이다.
4) 원고의 수정에 있어 주일 오전까지 주어진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은 주일 오전 예배당에 오기 직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5) 따라서 원고 준비는 설교 직전까지 계속돼야 한다. 설교 강대상에 서기 직전까지 원고는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대중들을 만나는 단 30분간 최소한의 실수까지 줄이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면서, 성령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기 위함이다.
-저는 부족하기 때문에 원고 수정을 끊임없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글쓰기는 그래서 처음에는 투박하고, 점점 고칠게 많아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는 과정을 겪어 나갑니다.
6) 설교 준비는 순서대로 하는 설교를 기반으로 하라. 그것은 목회자가 자기 유익을 위해 성경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필요한 장치이다.
7) 차례대로 설교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겨진 깊이 있는 묵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문장을 놓고 일주일을 고민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성경을 바라볼 때 삶과 연관된 깊이 있는 성경 묵상 훈련이 저절로 되게 된다.
-이재철 목사님께서 순서설교를 하시며 알려주셨던 내용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렇게 했을때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한 구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 그것이 묵상의 힘입니다.
8) 차례대로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개인적 이유는, 설교자가 전혀 의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오늘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에게 절묘하게 맞는 말씀을 주신다는 것을 성도들과 목회자가 깨달을 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힘 앞에 굴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위 권위있는 목회자들을 우상시 하는 성도들은 성경 말씀보다 목회자가 앞서 있습니다. 말씀보다 설교가 앞서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고 우리 골수를 쪼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차례대로 말씀 본문을 선택했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게 필요한 말씀을 공급해 주심을 아는 공동체는 사람을 우상시하지 않습니다.
9) 차례대로 설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차례대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중에 나와있는 큐티집이나 다른 책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순전한 성경대로 묵상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큐티집이나 책자는 이미 또 다른 사람의 해석이 들어간 책자들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과 1:1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10) 차례대로 성경을 묵상하면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많은 책과 신문을 봐야 한다. 오늘 이 말씀이 오늘 나와 공동체가 살아가는 곳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힘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늘 사회와 뉴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말씀이 육신 되었습니다. 복음은 이 세상을 구원시키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가 가난한 자들과 식탁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손을 붙잡는 것이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약자인 여인들의 편을 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설교자는 사회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율법사, 바리새인이 돼 있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남을 잘 정죄하고,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 말씀은 강조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기 모습 말입니다.
11) 사회와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되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지 않도록, 언론사의 뉴스도 진보와 보수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에게는 자기 정치적 스탠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자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 하나님 백성이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2) 성도들은 다방면에 종사하기 때문에, 가급적 다양한 분야의 이슈거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전문가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공감하기 위함입니다.
13) 따라서 매일 일어난 정세와 문화계 사회적 이슈들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록해 두거나 기억한다.
14) 그러나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설교 시간 외에 자랑하지 말라. 성도를 이해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공부한 것이지, 자랑하고 나타내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설교시간에는 예화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가면, 자기 지식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설사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해도, 모르는 게 낫습니다. 말은 아끼는 게 좋습니다. 드러날수록 은혜를 가리웁니다.
15) 말씀을 통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연관된 것이 있으면 바로 그것을 예로 들어야 한다. 다른 예화집이나 개인과 공동체와 상관없는 예를 드는 것은 전혀 필요 없다.
-좋은 예화는 예화집에 있지 않습니다. 고전 문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좋은 예화는 목회자의 삶에 있고, 공동체의 삶에 있습니다.
16) 철저히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이처럼 쏟아부은 시간을 통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린 원고를 바탕으로 설교하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준비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 감정이 설교 시간에 앞서지 않도록, 원고를 토대로 설교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자기 감정이 기도로 준비한 그 시간보다 앞서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설교가 끝나면 바로 강대상을 내려가지 말고, 잠시라도 묵상하며 내려가라. 그것은 자격없는 목회자를 세우신 하나님과, 설교를 끝까지 들어주신 성도들에 대한 예의이다.
-은혜에 취하지 마십시오. 설교자는 설교 내용에 만족하고 뉘우치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맡겨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설교를 바라보고 박수쳐 주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설교는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께 점검 받아야 할 사항입니다.
18) 차례대로 설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교회의 전체 일정과 주제에 맞추어 일년에 한두 번 정도의 주제 설교가 필요할 때가 있다. 원칙을 지키되 원칙을 고집하지 말고, 교회의 흐름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차례대로 하는 설교가 중요한 원칙이기는 하나, 그것이 우상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제도는 정신을 결코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 필요하다 판단되면, 얼마든지 주제 설교를 하는 것을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19) 주일이 한절 두절씩 차례대로 설교하는 날이므로, 다른 날을 정해 다른 본문의 설교를 할 필요가 있으면 하라. 그러나 그것 역시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고 듣는 눈을 좁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기 때문에, 차례대로 주어진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하는 삶의 시스템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3. 설교를 전하는 전후 마음가짐
1) 강단 위에서 설교할 때는 권위를 갖추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 아무리 연약한 자라 해도 함께 하신다.
-저는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 전용 강대상에서 설교합니다. 저는 앉아있는 동안 팔힘으로 온 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의지한 채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순간도 떨지 않습니다.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볼까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그 순간 가장 아름답게 빛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도들과 목사가 모두 공평한 시선으로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 곧 설교이므로, 모든 원고는 가급적 암기하여 성도들의 눈을 마주보며 설교하라. 성도들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와 한 마디도 목사와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성도들의 눈을 마주보며 설교하는 것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눈을 보며 암기하며 설교하라는 것은 참 많은 분들에게 듣는 내용입니다. 가급적 눈을 마주치며 설교하려 합니다.
3) 자기 성격대로 설교하지 말고, 일주일 동안 묵상한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라. (때로는 광풍처럼,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불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라.
-누구나 자기 스타일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묵상을 하다 보면 그 주간의 하나님 마음은 전혀 이야기스타일이 아닌 고전적인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가슴이 휘몰아칠 만큼 아프고 눈물날때가 있습니다. 설교자는 그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 스타일의 설교가 아니라 해도, 노력해서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설교 직전과 직후 모든 예배 시간에 가장 최선을 다해 예배하라.
-설교자라 해서 내 시간에만 최선을 다하면, 예배자는 될 수 없습니다. 설교는 예배 시간들 중 한 시간일뿐입니다. 내게 맡겨진 시간이 소중한만큼, 모든 예배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다른 시간에 최선을 다해 예배하십시오.
5) 다른 예배 시간에는 집중하지 않으면서, 내가 설교할 때 집중하라고 말하는 자는 자격이 없다. 그런 설교자의 설교는 시간이 갈수록 아무도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6) 농담이라도 지도자라 말하지 말라. 목사가 자신을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순간, 교회에 예수는 사라진다. 오직 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어야한다.
-설교자는 설교자이지 지도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지도자라 칭함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려 하고, 사람들이 지도자라 칭하는 것을 즐겨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지도자라는 단어를 지우고 있는 이유입니다.
7) 설교에 억지 유머를 넣지 말라. 청중이 웃는 것에 매료되면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자가 아니라 어느덧 인기인이 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젊은 설교자들과 청년들이 청소년 청년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일부러 설교할 때 문장과 단어를 틀린다든가 농담을 하는 경우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웃음은, 인기는 얻을지 모르지만 변화는 얻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진실성이 설교의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영과 진리이신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8) 설교 원고가 잘 기억이 안 나서 얼굴을 보지 못할 때는 차근차근 읽어라. 지금 그 순간의 감정에 치우치며 설교하는 것보다, 일주일 동안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면서 역사하셨던 하나님과 성령님의 감동으로 써내려간 글 한 줄의 메시지가 훨씬 더 큰 힘과 시간이 들어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는 원고 그대로를 읽을 때도 많습니다. 기억이 안 나서 읽을 때도 있지만, 준비한 시간 기도를 통해 만난 하나님 마음을 쓴 원고 그대로를 읽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눈은 마주치기 힘들더라도, 이미 영이신 하나님은 성도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한 줄 한 줄 읽더라도, 진심을 다한 설교는 반드시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원고를 암기해서 설교했던 제가, 갑자기 읽으려니 성도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바로 사람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마음이 저 스스로에게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설교하는 순간 성도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제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설교를 준비하는 일주일의 삶이, 설교자의 삶이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설령 설교하는 그 시간 모습이 초췌하고 볼품 없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살아 역사해서 멋져 보일 것을 저는 믿습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