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고 성경에서 말했지만 이 말이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음이 상하는 일뿐만 아니라 상실과 가슴 아픈 이별과 실패가 우리 삶에서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가리켜 슬픔의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기쁨의 사람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슬픔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주님은 우리가 슬픔을 털어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즐겁게 살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슬퍼할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주님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는 하나님께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마도 제 생각에는 다윗의 솔직한 감정 고백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슬픔과 비탄의 감정뿐만 아니라 원수들에 대한 복수심까지 일기장보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나 우리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데,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성품으로 미루어볼 때, 가뜩이나 사랑의 감정이 풍부하신 하나님께 이 얼마나 사랑스런 행동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이 삼남매를 사랑하셨지만 슬픈 사건을 겪지 않도록 막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주님은 그들을 위로하셨고, 절망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믿음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셨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지만, 슬픈 사건은 사건대로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리와 함께 화요일』이란 책에 보면, 루게릭 병에 걸려 전신이 마비된 채 하루 하루 살아가는 교수 모리 슈워츠와 그의 옛날 제자, 지금은 스포츠 기자인 미치가 화요일마다 만나서 주고 받는 대화가 나옵니다. 늙고 병든 교수는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놓고 농담까지 던질 정도입니다. 재미 있는 대화를 소개하면, 모리 교수가 자기가 묻힐 곳을 찾았다고 하니까, 제자가 "어딘데요?"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아~. 언덕 위의 나무 밑이야.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 굉장히 평화로운 곳이지. 생각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야."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거기서도 생각하며 지내실 계획이세요?"그러자 모리 교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야~. 거기선 죽어 지낼 계획이라네."
인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 가운데 하나는. 슬퍼할 때가 있어야 기뻐할 수도 있다는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면 제자들이 슬퍼하고 상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쌓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16:22)
요즘 여러분의 마음이 슬프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오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