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戊戌年)이 찾아왔다. 희망의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교회와 사회에는 아직도 어둠이 가득하다.

정권이 교체되고 해가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에도 밝은 소식은 많지 않았다. 되려 사건사고가 줄을 이었다. 연말에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목회자 2인을 포함한 29명이 숨졌고, 해상 선박 사고 소식도 계속 들렸다. 정치권에서도 포퓰리즘식 단기 처방만 넘쳐날 뿐, 100년 아닌 10년을 내다본 정책과 전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뉴스는 과거만 심판할 뿐, 미래 이야기는 실종됐다.

 

국제 정세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음 달 지구촌 스포츠 축제인 동계 올림픽이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 지역에서 예정돼 있지만, 30년 전 서울 올림픽 같은 거국적인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다. 북핵 위기로 불참 고려 국가가 나올 만큼 한반도 정세도 엄중하다. 주변국들은 호시탐탐 이를 활용해 우리야 어찌 됐든 자기네들의 국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것이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 사회의 현주소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제 역할을 다했는지 돌아보면, 자신있게 긍정의 대답하기 힘들다. 지난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갖가지 이벤트와 학술행사가 줄을 이었지만, 구호와 공약만 가득했을 뿐, 초대교회의 신앙을 회복하거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계승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2018년 새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저 세태를 비판하고 한탄하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롬 12:2) 한다.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 앞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고 역설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행복만을 구하는 시대 앞에 자신을 내던지고 불살라,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처럼 그저 그렇게 당연히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살며 흘러가기보다, 예수님과 그를 따른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연어처럼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어떨까. 조금이라도 짬을 내 소외되고 그늘지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 나 자신보다 못한 '예수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돕고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가정부터 직장까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백 마디 말보다, 천 마디 설교보다, 만 마디 논문보다, 우리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담아 전하는 작은 그 몸짓이, 그 눈물이, 그 한 마디가, 어두운 우리 주변을 밝히고 차디찬 이 사회를 녹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우리가 예수께서 계신 더 낮은 곳으로 한 발짝만 더 다가간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결코 이 사회와 교회, 이 민족을 뒤덮지 못할 것이다.

 

(Photo : 기독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