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 합중국 대통령은 현재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세계 각 나라로 하여금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식하도록 하겠다'는 20년 전 미 의회 법안을 전격 단행하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수도"임을 공식 천명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유대인 당사자뿐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인, 특히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언제나 종말론적 관점에서 수용하려는 기독교인에게는 모종의 역사의 수레바퀴로 인식되는 양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 감동적인 역사적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선 율법과 복음 문제이다.
'율법과 복음'이라는 말은 삼위일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성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을 포함한 그 어떠한 신학 분과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성서 도처에 나와 있는 개념이다.
율법은 무엇이고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은 대부분 율법에 대조되는(심지어 반대되는) 의미로 이해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율법도 복음이다. 그리고 복음도 율법이다.
▲Christ Pantocrator from Saint Catherine's Monastery in Sinai. |
그것은 마치 시나이 산 캐더린 수도원에서 최초로 발견된 예수 이콘(Icon)에 담긴 도상과도 같이, 한 얼굴의 반쪽은 자애로움인 반면 나머지 반쪽은 무서운 표정으로, 하나님의 준엄한 진노가 담긴 율법과 생명의 새 법인 복음이 동체이면서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이해! 구약시대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두려움으로 기다렸지만, 결말에 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도래한 것은 사랑의 새 계명으로의 교체였다는 이해이다.
이를테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
이 유서 깊은 메시아 예언을 신약의 공동체들은 예수님 초림의 근거로 수용하고 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저 이사야의 예언은 역사적 본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 것은 모두 실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이 포로기(대개는 느부갓네살의 1차 침략 B.C. 605년부터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한 주전 537년까지)에서 귀환을 천명하는 역사적 본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 소식'이란 우리가 흔히 제2성전이라 부르는 바로 그 성전으로 대변되는 시기를 이르는 말이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자고로 '아름다운 소식'은 문자 그대로 복음(Good News)을 이르는 말이다. 복음이란 말은 신약시대의 신조어가 아니라, 바로 상기 이사야 본문에 언급된 '아름다운 소식'의 70인 역본상의 동사 유앙겔리조(εὐαγγελίζω)에서 채용한 말이다. 즉 '아름다운 소식'은 다름 아닌 역사적 제2성전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이 물리적 제3성전을 희구한다는 사실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제2성전을 포함한 모든 손으로 지은(χειροποίητος) 성전들은 사실상 다 붕괴되었고, 오로지 예수께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αχειροποιητος), 자신의 몸으로 된 성전만이 제3성전이기 때문이다.
▲αχειροποιητος(아케이로포이에토스)라는 개념은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이름으로도 흔히 나타나는 개념이다. Holy Mandylion fresco from 17th Dionysiou monastery, Aghion oros, Greece. |
따라서 이 같은 '아름다운 소식'을 손으로 지은 역사적 시한으로 연장에 연장을 도모해, 마치 다시 이제 또 다른 제3성전이 도래할 것처럼 기대하는 사상을 가리켜, 이미 종결된 율법과 복음에 유동성을 꾀한다 하여 다소 속된 표현으로 '세대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은 단일한 계약으로서 이미 종결된 계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어떤 민중신학 계열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제3시대 그리스도'라는 술어를 쓰기도 한다. 이들은 역사적 예수를 인자 메시아로 믿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민중을 인자 메시아로 믿기 때문에, '제3의...' 라는 수사속에는 앞으로도 계속 어떠한 상황마다 어떤 격변을 야기시켜 '제4의, 제5의' 그리스도 시대를 견지하겠다는 문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 동일한 역사 관념(Hegelianism) 속에서 도출된 세대주의적 개념들이다. 마치 예언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것 같이 여기는 그러한 개념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문이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예의주시케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종말론적 요체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7 예루살렘 선언문 요약 번역:
"내가 집무실에 왔을 때(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열린 눈으로, 그리고 매우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도전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실패한 전략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도전 과제에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가 발표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1995년 의회는 예루살렘 대사관 법을 채택하여 연방정부가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그 도시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이 법안은 압도적이면서도 초당적인 다수에 의해 의회를 통과했으며, 불과 6개월 전에 상원의 만장일치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모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인정하거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지도 않았고, 그 법에 대한 유보권을 행사했습니다.
앞선 대통령들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승인하는 그 법안을 연기하는 것이 평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자기들의 믿음에 따라 그 유보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기가 부족하다 말하지만, 당시엔 그들의 그러한 인식에 따른 근거를 토대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봅니다.
그럼에도 기록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20년이라는 기간이 넘도록 그 법안을 지연시킨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속적인 평화 협정에 결코 근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게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하고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할 때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전 대통령이 이를 주요한 의제로 삼았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것을 이행하고자 합니다.
나는 미국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방침을 판단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이는 평화를 진전시키고 지속적인 합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오랜 염원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다른 주권 국가와 같이 자신들의 자산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주권 국가입니다.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70년 전 미국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시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수도를 세웠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대에 설립한 수도 말입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은 현대 이스라엘 정부의 거점입니다. 이스라엘 대법원뿐 아니라 이스라엘 의회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총리와 대통령의 초기 거주지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정부 부처의 본부가 위치한 곳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 그리고 군부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의 만남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3대 종교의 심장부일 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의 심장부이기도 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그리고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의 양심에 따라,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경외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오늘날 유대인들이 서쪽 벽에서 기도하는 곳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서쪽 벽에는 기독교인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무슬림은 알-아크 사원에서 예배합니다.
그러나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들은 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곳을 이스라엘의 자산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명백히 선언합니다.
이는 현실을 인정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옳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대사관 법에 따라 미 국무부가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옮길 준비를 시작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건축 설계사와 기술자들을 고용하는 즉시 건축은 시작될 것이며, 이어서 새로운 대사관이 완공되고 나면 그 평화에 대한 찬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발표를 하면서 나는 또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이 결정은 지속적인 평화 협정을 촉구하려는 우리의 강한 의지에서 벗어나는 고려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활발한 합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에서의 이스라엘 주권과 관련하여 분쟁중인 국경 문제에 관한 해결을 포함하여 어떠한 최종 지위로서의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관련 당사자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중략)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상호 이해와 존경의 길로 스스로 재헌신합시다. 우리가 우리의 오랜 기대를 다시 생각해 보고 마음과 마음을 서로 가능성 있게 활짝 엽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독교인, 회교도 지역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고귀한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에 있기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영진 교수. |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