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인 10월 31일을 10여일 앞두고 국내 신학자 4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양대 신학회인 한국기독교학회와 한국복음주의신학회를 비롯해 한국개혁신학회와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공동학술대회’가 20~21일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소망수양관에서 진행됐다. 근래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학술대회인 만큼 이틀 동안 세 번의 분과별 발표를 통해 총 78개의 논문이 소개됐다. 각 논문은 ‘종교개혁과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큰 주제 아래서 500년 전 종교개혁을 다방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성찰한 것들이다. 여기에 두 번의 주제강연과 세 번의 예배, 대토론회 등의 순서가 마련됐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인 심상법 박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은 우리의 기독교를 돌아보는 시간”이라며 “‘저항’과 ‘변혁’이라는 우리의 정체성과 행동양식을 낳은 종교개혁의 두 키워드는 오늘의 침체된 한국교회를 돌아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선 “진보와 보수를 넘는 보다 진솔한 토론의 광장이 되고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우리를 깊이 돌아보는 지성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노영상 박사는 “신학과 목회, 신학교육과 사회적 실천 전반에서의 개혁을 검토하고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을 진단하는 이번 학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개혁신학회 회장 김재성 박사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정치투쟁이나 도덕적으로 사회를 갱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성경적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며 “마침내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새롭게 제기한 성경의 가르침들은 신학적인 교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은혜의 신학이 펼쳐지면서 성도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근거로 삼고 있는 것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유산과 교훈들이며, 그것은 모두 다 성경에서 터득하고 배운 것들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신학사상, 교리적 가르침, 중심적인 교훈들은 모두 다 성경에 근거한 토론과 탐구의 결과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인 이종윤 목사는 “이제 우리는 500년 전 개혁자들의 신학과 신앙에 감사하고 그것을 복습할 뿐만 아니라, 제2의 종교개혁의 횃불을 드는 심정으로 이 시대의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성경적 교회를 일으켜야 할 것”이라며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굳게 붙들고 이 시대의 소금과 빛으로 다시 거듭나자”고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신학자들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신학자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첫날 개회예배 후 김재성 박사가 발표한 이 선언문에서 신학자들은 총 10개의 항목에서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신학자 선언
종교개혁 500주년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는 한국의 신학자들과 참가자들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95개조 조항을 발표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며, 종교개혁의 신앙적 유산을 재조명 하면서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의 회복과 사회적 갱신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개혁코자 하였던 것을 기억하며, 이에 우리도 근본으로 돌아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1.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그릇된 신학과 전통에 맞서 오직 성경 말씀의 권위에 의존하여 변질된 교리와 잡다한 종교적 허상들을 벗겨내어 기독교의 복음을 제시하려 했던 개혁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을 선언합니다.
2.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음을 고백하였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계승해 나갈 것을 천명합니다.
3.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해서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였던, 종교개혁자들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확신을 세상과 교회를 향해 선포할 것을 다짐합니다.
4. 우리는 인간이 성취와 종교적 업적이 없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고백하는 믿음을 통해, 죄의 용서와 성화 그리고 구원이 주어진다는 종교개혁자들의 복음 선포가 지금도 유일한 소망임을 확신합니다.
5.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힘썼던 정신을 계승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에 근거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 속에서 섬기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6.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상호 존중하였으며 진리를 회복하여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고자 연합과 일치의 노력을 경주하였음에 유의하면서, 오늘날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지상의 교회들이 일치와 연합을 위해 힘쓰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확인합니다.
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과 부패에 맞서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노력하며, 자신과 주변을 계속적으로 갱신하기 위해 날마다 선한 싸움에 힘쓸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주님의 샬롬을 성취하기 위해 국가 간의 폭력, 특히 오늘의 한반도에 드리워진 핵전쟁의 위기를 끝내야 하며, 불의한 사회 상황이 가져오는 폭력, 또 자연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생태계의 파괴를 극복해 나갈 것을 선언합니다.
8.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했던 것처럼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돌보시고 눌린 자들과 소외당한 자들을 치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목양해 나갈 것을 천명합니다. 모든 교회들이 영광의 신학을 추구하는 목회 철학과 개교회 중심주의, 성장주의, 권위주의 등을 내려놓는 것이 오늘의 과제이며, 작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각종 증오와 갈등을 사랑으로 감쌀 책임이 기독교인들에게 있음을 확인합니다.
9. 기술자본주의 시대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으나, 역설적으로 삶의 환경은 황폐해졌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질서 내에서의 새로운 기술 발전을 기대하면서, 그에 따른 생태계에 대한 책임적 윤리 의식을 잊지 말 것을 다짐합니다.
10. 신학은 겸허히 교회를 섬겨야 하며, 교회는 신학 앞에서 항상 자신을 조망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와 신학은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교회 없는 신학이나, 신학 없는 교회는 온전치 않은 것으로, 우리는 신학무용론의 반지성주의와 교회 없는 신학의 공허함을 모두 경계합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을 다짐하면서, 진리에 대한 확고한 태도와 경건한 자세를 갖추고, 모든 일에 겸손하면서도 용기와 희망의 확신을 갖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 진리를 적용하고 발전시켜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사명에 헌신할 것을 선언합니다.
2017년 10월 20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공동학술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