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마치고 지난 시간 사역들을 되돌아보니 만족한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모든 은퇴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두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떠오른다. 본 주제를 가지고 은퇴자들에게 질문해 보았는데 한결같이 만족하는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많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이 있느냐는 질문도 여러분이 모두 대동소이했다. 그 제안들과 본인의 마음을 포함해서 몇 가지로 제시한다.
1. 소명에 충실 하라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소명은 중요한 문제이다. 소명으로 말하자면 목회에 대한 소명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목회가 힘든 분야이지만 그래도 기쁨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소명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 부름 받음의 소명이 너무나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도됨에 대해서 모든 서신서 첫머리에 반드시 "주께로부터 부름 받아 사도된 나 바울은 ...."이라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또 고전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다.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가. 소명이 이렇게 분명한 목회자는 열정적으로 목회사역을 이룰 수 있다.
오늘 후배 목회자에게 이 소명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목회는 주께로부터 위임된 사역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성심껏 수행해야 할 사역이다. 이 부분이 분명하면 목회사역은 행복한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다.
2. 하나님 목회를 하라
본질에 충실 하라는 말이다. 오늘 목회현장에는 목회 외적인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들이 있다. 제왕적 목회, 물질주의적 목회, 소통 없는 목회, 기복신앙적인 목회, 프로그램 중심목회 등이다. 너무 수단적이고 방법론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본질에서 목회가 너무 많이 이탈했다는 말이다. 즉 자기중심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오늘 목회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많아진다. 너무 과시적이다. 너무 인간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말은 본질에서 너무 많이 이탈해 있다는 말이다. 교회성장이 좀 늦고 경쟁에서 발전이 좀 늦어질지라도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 목회는 하나님 목회이기 때문이다.
3. 영성에 충만 하라
목회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영성에 의해 사역을 수행하여야 한다. 오늘은 대부분 지성위주의 목회를 한다. 지식과 정보와 이론이 너무 앞선다. 영성이 없는 목회에는 변화와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와 성경 연구에 몰두하라. 영력을 구비하라. 목회에서 영성이 부족하면 수단이나 방법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게 된다. 왕상 22:의 미가야 선지자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거짓 선지자들이 왕 앞에서 영혼 없는 말을 할 때 미가야 선지자는 네가 골방에 들어갈 때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영성 없는 목회는 영혼들을 떠나가게 만들거나 가나안 성도들을 양산하게 된다.
4. 상식이 있는 목회를 하라
한국교회가 말이 많고 갈등이 많은 이유는 목회현장에 합리성이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목회자들의 금전거래의 불투명성은 비상식적 행태 중 가장 두드러진 형태이다. 목회자들은 마음대로 돈 쓰는 것을 권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재정에 대한 합리성이 없으면 반드시 불분명의 폐해를 겪게 되고 마침내 지도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행 20:33절을 보면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크게 교회를 건축하는 일, 건축 후 채무로 인한 교회파산, 각종 소송행위, 재정 스캔들, 모두 상식이 결여된 목회에서 기인되는 부작용들이다.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원로들의 끊임없는 욕망과 후임자의 지나친 견제는 비상식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교회를 병들게 한다. 모두 상식을 무시해서 나타나는 병폐들이다.
5. 지도자성을 발휘하라
목회자는 너무 좌우에 지나쳐 편향되거나 지역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목회 지도자는 먼저 이 편협함부터 극복을 해야 한다. 목회자는 먼저 내 교회, 내 교단, 내 신학의 도그마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생각이나 의식 그리고 교계 관계나 신학 등에서 영혼의 그릇이 컸으면 좋겠다. 오늘은 교단주의, 교단신학주의, 지역감정, 좌우파 의식이 너무 강해 예수는 그 다음이 되었다. 목회자들이 지도자성을 발휘하려면 먼저 이 편견들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영혼의 커야 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오늘 세종대왕의 지도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세종은 영혼이 크고 넓고 따뜻했다. 그의 통치이념은 위민으로 압축된다. 세종은 만삭된 노비가 노동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산후 휴가제를 창안 실시하였다. 자신의 세자책봉을 끝까지 반대했던 황희를 임금이 되자 정승으로 18년 동안 봉직하게 했다. 백성들의 민족자긍심을 위하여 한문이 있었지만 훈민정음을 창제 하였다. 세종 12년에 조세개혁을 할 때 5개월 동안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반대자 17만 명을 끝까지 설득하여 무리 없이 세법개정을 완성하였다. 노비출신인 장영실을 정사품 호군으로 등용하여 자격루인 해시계를 발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쇠약한 몸으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정사를 시작하였고 집현전 학자들로부터 올라온 각종 문서들을 결제하였다고 한다. 이 지도력이 통합의 지도력이다. 이런 세종의 미래지향적인 마음을 백성들이 알고 세종은 진정한 우리의 스승이라 하여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날이 세종의 생일날이다.
이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우선 영혼의 그릇이 커야 가능하고 그 의식이 미래지향적이어야 가능하다.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 상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정체성이 분명하고 세종이 위민이 통치철학이었다면 오늘 목회자들의 이상은 하나님 사랑이고 그 사랑을 목회현장에서 구현하는 일이라 하겠다.
/글=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